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②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②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8.12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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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개전초기 전황도
임진왜란 개전초기 전황도

일본 본토로부터 후방 보급로가 끊기고, 朝·明연합군의 반격과 동장군에 몰린 일본은 평양과 함경도 일대의 점령지로부터 겨 한성으로 후퇴했다.

 그해 겨울을 가까스로 넘긴 일군은 이듬해 1593년 봄 4월 심유경(沈惟敬)의 강화교섭을 기회로 일시 부산까지 퇴각, 남해안 일대 왜성(倭城)을 쌓고 바다를 배경으로 농성하는 방어군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때까지의 전쟁의 경과는 2백여 년 뒤 1812년의 프랑스-러시아 전쟁의 경과와 매우 흡사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영국에 대한 대륙봉쇄령을 듣지 않는 러시아를 굴복시키기 위해 47만의 대군으로 이해 6월 침공을 개시, 3개월만에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그러나 러시아 군 총사령관 쿠트조프장군의 초토화전술과 조선의 의병과 같은 농민게릴라들의 유격전으로 후방 보급로가 끊긴데다가 때마침 엄습한 혹심한 동장군과 반격에 나선 러시아군에 쫓겨 참담하게 패주하고 말았다.

 만일 朝·日전쟁 첫해의 전쟁결과가 조선조정 전쟁지도부의 계획된 방어전략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면 세계전사상 탁월한 군사전략으로 꼽힐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가운데 1597년 정유년(丁酉年) 11월 풍신수길이 죽자 최후의 결전을 편 이순신함대의 맹 추격속에 엄청난 희생을 뒤로 남긴채 황망하게 日본토로 패주하고 말았다.

 전후 7년에 걸쳐 조선과 일본 그리고 明나라 동양 3국간에 벌어진 이 대규모 국제전을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 보면서 우리는 두가지 문제(問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번째의 문제는 이 전쟁에서 조선은 명백히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는데도 당시의 조정은 물론 백성들도 승전을 깨닫지 못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패배한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간의 전쟁은 때로는 교전중의 화해로 무승부의 경우가 없지 않고, 어중간한 종전으로 승패가 모호한 경우 또한 없지 않으나 대부분의 전쟁은 승패가 분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승전과 패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승전(勝戰)은 한 국가 한 민족의 영광이고 긍지이며 자존(自尊)이다. 패전(敗戰)은 굴욕이고 불명예이며 비굴이다. 한 국가의 흥망이 갈리고 민족의 존망을 가를수도 있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 1992년 1월1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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