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①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①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8.07 1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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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순절도

1592년 임진년(壬辰年) 조선(朝鮮)과 일본(日本)의 7년전쟁은 조선의 최후의 승리로 끝났고 승리(勝利)의 주역은 전라도(全羅道)였다.

그러나 종전(終戰) 4백년이 되도록 한국인(韓國人)은 이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했음을 깨닫지 못해왔고 전라도가 그 주역(主役)이었음을 더더구나 알지 못해왔다.

이제 잃어버린 국가자존(國家自尊) 민족자존(民族自尊) 그리고 전라도의 지역자존(地域自尊)의 회복을 위해 그때의 전쟁은 다시 조명되어야 하고 전라도의 역할은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1592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백년전이다. 이해는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왕조(朝鮮王朝)를 세운 1392년으로부터 정확하게 2백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해 임진년에 조선왕조는 미증유의 전란에 휩쓸린다.

그무렵 백여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마감시키고 일본 전역을 장악한 풍신수길(豊臣秀吉)은 두가지 목적으로 조선침공을 계획한다.

하나는 대륙진출이다. 섬나라 일본으로서는 국가건설이래의 꿈이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전국시대를 통해 팽창할대로 팽창한 일본내 무사계급의 넘치는 힘을 국외로 방출하여 국내의 정치적 안정을 꾀하는 일이었다.

이해 4월13일, 부산(釜山)에 기습 상륙한 일군(日軍)은 연병력 22만명의 대군으로 20일만인 5월3일 수도 한성(漢城)을 점령했고 이어 평양(平壤)과 함경도(咸鏡道)까지 유린했다.

전쟁 초기 일군은 일방적으로 우세했다. 백여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통해 연마된 실전 능력에 조총(鳥銃)이라는 신무기로 무장되어 조선의 육군을 압도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수군(水軍)은 무적의 조선수군 이순신(李舜臣)함대에 연파당하여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실패했고, 조선 의병(義兵)들이 전국에서 봉기하면서 해상과 육상의 보급로가 모두 차단되고 말았다. 곡창 전라도 진격에 실패, 군량의 현지조달도 불가능해졌다.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만주(滿洲)와 시베리아로부터 동장군(冬將軍)이 엄습해 왔다. 여름 군복을 입고 함경도까지 쳐 올라간 일군은 전사자보다 동사자(凍死者)가 더 많았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1월1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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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2019-08-23 14:57:58
니라꼴하고는똑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