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무비유환 ⑦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무비유환 ⑦
  • 김재춘
  • 승인 201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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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지경(無人之境) 달리듯 하루 50리씩 천리길을 단숨에

일본 침공군이 경상도 전역을 단숨에 석권했으나 그들은 곧 천험의 장벽에 부딪힌다.

 소백산맥의 험산준령이다. 소백산맥은 조선반도의 등뼈를 이룬 태백산맥의 강원도 경상도 접경지점에 하늘로 치솟은 태백산(해발 1천567m)에서 따로 줄기를 얻어 도중 소백산(1천439m) 덕유산(1천614m), 지리산(1천915m) 등 해발 1천m대를 넘는 연봉(連峯)을 이으며 경상도와 충청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조선의 큰 산줄기다.

 군대의 이동은 사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무기와 식량, 화약과 화살 등 전투용품, 군막(軍幕)과 취사용구및 군복 등 각종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대규모 수송대가 함께 움직인다.

 소백산맥을 넘어 충청도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몇군대 돌파해야 할 고갯길이 있었다.

 소백산과 도솔산(1,317m) 사이의 죽령(竹嶺 689m)으로 영주(榮州)과 단양(丹陽)을 잇는다. 주흘산(1천75m)과 백화산(1천63m) 사이의 조령(鳥嶺새재 642m)으로 문경(聞慶)과 괴산(槐山)~충주(忠州)를 잇는다. 또 다른 백화산(903m)과 황학산(1천111m)사이의 추풍령(秋風嶺 217m)으로 금천(金泉)과 옥천(沃川)을 잇는다.

 소백산맥은 침공하는 일본군으로서는 큰 장애물이지만 방어하는 조선군으로서는 하늘이 마련해준 천연의 장성(長城)이었으며 이들 고갯길은 하나의 관문(關門)이었다.

 조선은 당연히 여기를 지켰어야 했다.

 그런데 그 무렵, 조선의 명장들이라해서 현지에 급파됐던 이일과 신립, 누구도 이 천험의 요새들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뒷날, 조령을 지나던 명나라 원군 총사령관 이여송(李如松)이 지형을 살펴보고 크게 탄식했다.

 "조령이 우뚝 높이 백리를 뻗어 / 분명 하늘이 韓나라를 지키려 했도다 / 이렇듯 험한 요새 갖고도 알지못해 지키지 않았으니 / 申총병도 가위 무모하고나" (조령차아백리장鳥嶺嵯峨百里長/ 분명천작호한방分明天作護韓邦/ 유험여이불지수有險如而不知守/ 신홀병가위무모의申惚兵可謂無謀矣)

 이일은 군관들만 거느리고 조령을 그대로 넘고 문경을 지나 23일 상주에 이르렀다. 목사 金해와 군관 그리고 병사들이 모두 달아나고 없었다. 홀로 남아있던 판관 권길(權吉)이 다음날까지 주변 백성들 800여명을 모았다.

 소소행장 1번대 선봉이 이날 상주 남쪽 20리 지점 장천(長川)까지 들어와 진을 치고 있었다. 개령(開寧)사는 백성이 달려와 사실을 알렸다. 이일은 엉뚱하게 이 백성의 목을 베었다. 군심을 어지럽히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서도 척후 한 명 내보내지 않았다. 수시로 척후를 보내 적정을 살피는게 작전의 기본중의 기본인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25일 아침, 이일은 백성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