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21> 풍수의 혁명가 홍성문과 회문산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21> 풍수의 혁명가 홍성문과 회문산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22.04.2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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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얼굴에서 코를 흔히 산에 비유한다. 지나치게 높은 산엔 사람이 살 수 없다. ‘콧대가 높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듯, 높은 산도 마찬가지이다. 그만그만한 산들이라야 품이 될 수 있다. 전북의 산들이 그렇다. 내장산·모악산·회문산·용골산...산마다 성격이 다르다. 그 산을 기대고 사는 사람들의 품성 또한 다르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간다’는 관념은 동서양이 같다. 죽어서 앞산에 묻히거나 뒷산에 묻혔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사설묘원 납골당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설묘원으로 가더라도 땅에 묻히지 않고, ‘사물함’ 같은 곳에 안치된다. 땅으로 가지도 못하고 하늘로도 못간다. ‘땅에 묻힌다’함은 세월 따라 점차 사라지는 것을 전제한다. 까닭에 오래된 조상 묘는 벌초와 사초를 하지 않는다. 봉분이 낮아져 평평한 땅으로 돌아가게 함이다. 비석없이 두어 자 남짓 흙으로 봉분을 만들면 충분하다. 필자가 조부모·부모묘에 석물(石物)을 올리지 않는 이유이다. 멧돼지가 연례행사로 ‘무단침입’하는 할머니 묘는 아예 봉분을 없앴다. 그 위에 꽃을 심었다. 묘지 정원[墓園]이되 꽃의 정원[花園]이 되게 하고자 함이다. 장차 필자도 그 언저리에서 흙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필자는 퇴근길로 옥정호수와 회문산 사이의 30번 국도를 가끔 이용한다. 경치가 좋아서이다. 회문산은 정읍·임실·순창을 접점으로 하는 모순으로 가득 찬 산이다. 회문산 모순의 덫에서 필자의 외갓집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외갓집은 회문산 근처 ‘물우리’였다. 6·25전쟁이 터지자 외삼촌 중 한 분은 국군에 징집되어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또 다른 외삼촌은 인민군에 끌려가 회문산에서 죽었다. 유해는 찾을 수 없었다. 둘 다 회문산에 묻혔다. 그때 둘의 나이는 20세·18세였다. 명산 그 어디에 묻힌 것을 위안으로 여겨야 할까? 회문산처럼 묘지가 많은 곳도 드물다. 최익현을 따라 의병에 참가한 임병찬 의병장도 이곳에 묻혔다. 산정상에도 묘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왜 묘지가 많은 회문산이 되었을까?

증산교 창시자 강증산 덕분일 것이다. 그는 회문산을 다섯 신선이 바둑판에 둘러앉아 있는 형국[五仙圍碁穴]의 길지로 보았다. 그 어머니 무덤도 회문산 정상에 있다. 그러나 ‘오선위기혈’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임실이 배출한 풍수 홍성문 덕이다. 홍성문의 생몰연대는 조선 후기로만 알려져 있다. 서얼 출신인 그는 집안에서 쫓겨나 인근 절(만일사?)에 들어가 풍수를 깨쳤다. 그는 ‘회문산가(回文山歌)’라는 풍수 비결을 남겼다.

‘비결’의 핵심은 “돌산에 장사 지낼 수 없다[石山不可葬]”(‘금낭경’)는 풍수 금기를 깬 것이다. “돌산에도 흙을 메워 쓸 수 있다[石山補土葬]”는 ‘혁명’을 일으킨다. 한반도 풍수 역사에 획을 그었다. 본디 돌산은 흉지로 사람들이 꺼린다. 그런데 흉지가 명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주변에 돌산과 돌밭밖에 없는 산간지방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분명 그는 제도권 풍수 틀을 파괴한 혁명아였다. 한반도 풍수사에 큰 역할을 하였음에도 임실·순창에서만 명맥이 잔존함이 안타깝다.

홍성문의 풍수설로 인해 20여 년 전만 해도 회문산 정상과 주변 능선마다 무덤 수십·수백 개가 밀집하였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든다. 후손들이 이장을 하거나 파묘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당시 그들은 이곳이 길지라고 굳게 믿었다. 홍성문이 언급한 ‘24길지’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믿음과 행위들이 얼굴 한번 못 본 후손들에 의해 매정하게 부정되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다. 군청이나 산림청도 ‘불법 매장’ 운운하며 혼령과 후손들을 겁박함이 능사가 아니다. 그 땅에서 태어나 그 땅으로 돌아가게끔 함이 옳다.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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