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23> ‘터무니’와 친절함이 지자체의 살길이다.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23> ‘터무니’와 친절함이 지자체의 살길이다.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22.05.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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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황당하면 “터무니없다”라고 한다. ‘터무니’는 터[址]에 새겨진 무늬[紋]를 말한다. 인간이 땅에 새겨놓은 무늬는 역사와 문화의 흔적으로 남는다. 그 땅의 무늬를 살피면 그 땅의 빼어남[光]을 볼[觀] 수 있다. 관광(觀光)의 본래뜻이다.

지자체 소멸 위기를 맞는 시군들은 관광객·귀촌 유치에 안간힘을 쓴다. 지자체의 ‘문화관광’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친절함이다. 둘째는 그 땅의 무늬, 즉 터무니를 잘 읽어내려는 자세이다. 문화재위원으로 필자는 전국 시군을 자주 방문한다. ‘문화재현상변경’ 현장을 실사하기 위함이다. 지자체마다 준비하는 내용과 자세가 다양하다.

금년 2월 말 강원도 고성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군청 담당과장과 주무관이 나와서 주민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변호를 하려는 모습이었다. 실사가 끝나자 담당 과장이 작은 상자를 하나씩을 건넸다. “군수님이 고성 홍보용으로 특산품을 상품화한 견본입니다. 고성 많이 홍보 해주세요.” 귀가하여 상자를 열어보니 고성산 미역·황태·산나물 포장이 1회 요리 분량으로 알뜰히 채워져 있었다. 견본이지만 감동받았다. 순간 2018년 12월 순창군청의 일이 떠올랐다.

‘순창군 향토문화유산 심의위원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위원명단을 보니문화재위원 및 박물관장들로 해당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대가들이었다. ‘훌륭한 분들을 잘 모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10건이 넘은 안건들이 심의 대상으로 올라왔다. 한 건당 20분씩 심의하더라도 3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그런데 안건의 “소유자”가 군·면·마을의 문화유산이 아닌 “종중 소유”였다. ‘특정 문중’의 묘·정려각·묘비·정자·바위에 새긴 글씨 등이 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군수의 윗대 조상묘도 안건에 포함되었다. 옆에 앉은 위원이 혼잣말을 한다. “이러려고 군수되었나...” 필자는 위원이기는 하지만 군민이다. 다른 심의위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좌불안석이 되었다.

상정안건 가운데 도나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것도 있었다. 예컨대 안건 “대사간 김극뉴 묘 일원”은 ‘조선8대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8대명당’이라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는 없다. 조선시대의 균분상속(均分相續)과 윤회봉사(輪回奉祀)의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은 아들딸 차별 없이 평등하게 유산을 상속하도록 규정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의무로 아들딸·친손자·외손자 상관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해당 안건은 함양박씨·광산김씨·동래정씨가 균분상속과 윤회봉사의 인연으로 장인과 사위 그리고 외손의 묘가 한자리에 조성된 귀중한 문화유산 현장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군청의 무지함은 둘째치고 그 대응방식이다. 의미 없는 심의시간이 길어지자 어느 위원이 ‘이게 뭐 하자는 것이냐!’라는 투로 심의를 중단시켰다. 필자가 무안하고 죄송하여 일부러 주무관에게 역정을 냈다. “제1회 위원회가 개최되면 군수가 먼길을 찾은 위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라도 대접하기 마련인데, 군수도 부군수도 담당과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두 어디 갔습니까? 참석자 명단에 서명하려고 보니 10만 원이 쓰여 있던데 거마비입니까, 심의료입니까?...” 순창군은 광주와 가깝다. 전주나 서울에서 온 위원들이 갖는 ‘심리적 거리감’이 멀다. 먼길을 온 손님에게 한끼 식사는 아니더라도 군수의 물 한잔 대접은 기본 예의이다.

문화관광을 위한 ‘친절함’도 ‘터무니’도 없었다. 그것으로 “순창군향토문화유산심의위원회”는 끝이 났다.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순창군을 방문한 심의위원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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