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4) 김양숙 시인의 ‘날 것의 詩’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4) 김양숙 시인의 ‘날 것의 詩’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5.16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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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것의 詩’
 

 - 김양숙 시인

 

 한 편의 그림을 보며 시 같다는 말

 음악 한 곡조를 들으며 시 같다는 말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시 같다는 말

 이제 시 같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말자

 시란 날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여기는 촛불로 켜진 광화문역입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시는 분들은 몸조심하시고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5호선 기관사님의 말처럼

 

 오늘 집회에 참석하신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듭시다. 집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승객여러분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3호선 안국역의 기관사님의 말처럼

 

 초겨울 바람에도 1000일은 꺼지지 않는 촛불이어야 하지 않는가.

 

 <해설>  

 시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는 진정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시인들은 가끔 시 앞에 앉아 이런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시 한 편이 독자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책무 때문이겠지요. 때로는 시보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더 진정성을 지녀서 위안이 된다면 시는 없어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초겨울 바람에도 1000일은 꺼지지 않는 촛불”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시인이 세상을 향한 책무는 더 한층 무겁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이 광화문을 향하던 ‘하 수상한 시절’에 쓴 듯합니다. 그 시기에는 누군가가 까딱 건들기만 해도 폭발할 듯 했던 곳이 광화문이었지요. 저 또한 매주 토요일은 어떤 의무감을 떠안은 듯 광화문을 갔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너나없이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사회적 감정이 되어 한 목소리로 외치던 함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 합니다. 이 시기에는 시인도 시 한편 쓰기보다는 촛불 한 자루를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분위기였지요. 광화문에 모여 ‘분노와 염원의 촛불’을 들고 우리의 염원을 지키려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시는 ‘날 것’입니다. 토요일마다 오가던 지하철에서 “어느 기관사님이 동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모두의 가슴에 박히는 위로의 말이며, 진정한 시라고 보았습니다. 또 “여기는 촛불로 켜진 광화문역입니다…대한민국을 위해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오늘 집회에 참석하신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듭시다. 집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승객여러분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는 기관사의 말은 시보다 더 따뜻한 위로의 말로 느껴집니다. 

 내일은 5.18입니다. ‘세상을 향한 말 한마디’ 같은 ‘날 것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날이 될 겁니다.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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