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6) 유안진 시인의 ‘다시는 남의 돈 안 먹을게요’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6) 유안진 시인의 ‘다시는 남의 돈 안 먹을게요’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5.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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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남의 돈 안 먹을게요’
 

 - 유안진 시인
 

 

 겁먹은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엄마에게 고했다

 얘가 글쎄 돈을 삼켰어요

 얼마짜린데요? 엄마가 물었다

 친구 거 뺏아 놀다가, 뺏긴 애가 다시 뺏으려 하자

 입에 넣고 삼켜버렸대요

 엄마, 나 죽는 거지? 아이는 울어댔지만, 엄마는 침착했다

 남의 돈 수십억씩 꿀컥해도 안 죽더라

 그깟 100원짜리 먹고 죽을까잉 걱정 마

 

 기가 막힌 선생님은 돌아갔고, 아이는 걱정되어 기도했다

 하느님, 다시는 남의 돈 안 먹을 테니 살려 주세요

 다 다음날 아침, 앉은 변기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들여다본 아이는 엉덩이를 깐 채 기도부터 했다

 하느님 진짜 감사합니다.

 차동엽 신부님 특강에서

 

 <해설>  

 재미있는 시입니다. 남의 돈을 먹고 걱정하는 순진무구한 아이와, 세속에 때 묻은 그 엄마가 하는 걱정의 차이는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서 검은 돈이라 일컫는 남의 돈을 수십억씩 꿀꺽해도 아무렇지 않게 잘만 살아간다는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어 읽는 재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세태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이의 엄마는 그 돈이 자연스럽게 배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범하게 세태를 꼬집어 말 할 수 있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아이는 지금 ‘꿀꺽 삼킨 돈’의 양이 문제가 아니고, 그 돈이 뱃속에서 무사히 변으로 나올 수 있을까가 더 걱정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하느님, 다시는 남의 돈 안 먹을 테니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무사히 그 돈이 나오자 안심이 되어 이번에는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께 또 합니다. 막히지 않고 배변으로 나오게 되자 살았다는 안도의 순간일겁니다.
 

 요즘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남의 돈을 먹는 일보다, 내 손으로 버는 일이 더 마음 편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언제 부턴가 우리 사회는 남의 돈을 먹는 일이 만연해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런 묵직한 이야기를 아주 가벼운 농담처럼 우리 일상의 테이블에 살짝 올려놓고 우리를 뒤 돌아보게 합니다.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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