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의 꿈’
- 강민숙 시인
백산에 올라 삭정이 주워
비 오는 날 아버지가
대청마루 걸터앉아 솟대를 만드신다.
조선낫으로 나무껍질 벗겨
가지 끝에다 종이배 닮은
나무둥치 깎아 올려놓고
어린 나를 보며 씩 웃으신다.
아버지는 저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위에
왜 배를 매달아 놓으신 걸까
동진강 물길 따라
용왕님 만나고 싶은 걸까
그러다 송곳으로 나무둥치에
구멍을 뚫으신다.
돛대를 세우는가 싶더니
새 주둥이를 끼워 넣으신다.
아버지의 꿈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나 보다
몰아쳐 오는 외세의 거친 폭풍 속에서
갑오년 동학농민의
외침을 듣고 있나 보다
길게 목을 뺀 새가 되어.
<해설>
제 고향은 부안 백산입니다. 어릴 때부터 백산의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철이 들어서야 백산에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담긴 줄도 알았고,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백산에 올라 삭정이 주워/비 오는 날 아버지가/대청마루 걸터앉아 솟대를” 만들었습니다. 어린 나는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저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위에/왜 배를 매달아 놓았을까.” 그것은 ”동진강 물길 따라/용왕님 만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꿈은/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다.” 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저마다 가슴에 하늘을 모시고 사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것입니다.
백산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전주성을 위협할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의 군세를 결집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백산에 모인 동학농민군은 “몰아쳐 오는 외세의 거친 폭풍 속에서/갑오년 동학농민의/외침”을 온 천하에 선포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도민일보의 시 해설을 맡은 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신문사의 제안대로 졸시 「솟대의 꿈」과 해설을 싣게 되었고, “갑오년 동학농민의/외침”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