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의병전투 (18)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의병전투 (18)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1.17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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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유종개 태백산, 평안도 임중량 중화서 항전

12월에 들어 정문부는 길주성을 공격 탈환키로 하고 10일 3천여 병력으로 성을 에워싼뒤 30리 남쪽 마천령(摩天嶺) 기슭의 영동관(嶺東館) 책성(柵城)을 지키는 적군 4백명의 응원출동을 차단키 위해 정견룡, 유경천, 오응태 3위군을 접근로에 배치해두고 복병장 김국신(金國信)군을 입구에 매복시켰다.

 책성의 적군 전원이 출동하여 길주를 향하다가 정문부 의병군의 포위망 안으로 들어와 1백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책성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암경도 안변부에서 2번대 가등청정 군과 갈라진뒤 점령 예정지 강원도로 쳐들어간 4번대 모리길성(毛利吉成)군이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전역을 휩쓸고 8월중에 경상도와의 접경지대를 넘어 예안·영해 방면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낙동강 서쪽 경상우도 지역의 의병군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데 비해 안동 등 조선왕조 관료들을 집중적으로 배출한 경상좌도의 의병군 활동은 권응수(權應銖)군의 영천성 수복전 외에는 대체로 두드러진게 없다. 그럴만한 까닭도 있었다. 경상좌도 10여읍은 적의 주공격로에서 비껴있어 일본군이 진격하지 않았으며 몇몇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오히려 그로인해 일본군의 침공을 불러 화를 입을까 걱정하고 처자와 가재들을 깊은 산속에 피해두는데 열중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前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정6품) 유종개(柳宗介)만이 의병 수백명을 모아 태백산중에 진을 치고 있다가 8월22일 모리길성 휘하 추월종장(秋月種長) 고교원종(高橋元種)군 3천여명과 봉화현(奉化縣) 북쪽 小川에서 맞부딛쳤다.

 유종개는 적의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척후를 내보냈으나 적군이 조선백성들의 복장으로 척후를 속이고 의병군 본진을 기습하는 바람에 의병장 유종개를 비롯, 장서(掌書) 윤흠신(尹欽信), 흠도((欽道)형제 등이 모두 전사했다.

 일본군은 그길로 예안을 점령하고 남진했으나 영해부사 한효순(韓孝純), 현감 이수일(李守一)의 관군에 격퇴되어 강원도로 돌아갔다.

 평양성에서 전진을 멈춘채 증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1번대 小西行長군을 대동강 남쪽 중화군(中和郡)의 어랑산맥(於郞山脈)에 수비병력을 배치하고 황해도 점령군인 3번대 흑전장정(黑田長政)군은 대우길통(大友吉統)이 지휘하는 6천명의 군사를 황주(黃州)와 봉산군(鳳山郡)에 분산 배치하여 개성과의 보급 및 연락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평안도에서는 중화군 사람 林중량이 의병군을 일으켰다. 윤붕(尹鵬)이 뜻을 같이하여 4백여명의 청장년을모아 중화의 서쪽 직산(直山)에 보루를 쌓고 서진(西陣)을 구축했으며 전 만호 차은진(車殷珍)·은로형제가 수백명의 의병을 모아 중화동쪽 운취봉(雲鷲峰)에 보루를 쌓고 동진을 구축하며 유격전을 전개했다.

 중화군(中和郡)은 대동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평양의 소서행장군에는 뒷덜미를 누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들은 수시로 보루를 내려가 일본군 소규모부대를 기습하고 대부대를 보루까지 유인하여 격파하는 등 대담한 작전을 펼쳤다. 때로는 대동강 언덕까지 진출하여 적군을 교란하기도 했다.

 그무렵 평양성의 일본구는 조선 백성들을 잡아다가 방어시설을 구축하는 한편 병사들의 막사를 짓는 등 월동준비로 겨울을 평양에서 보낼 계획을 하고 있었다.

 12월1일 소서행장군이 대군을 동원하여 동서 의병진 보루를 공격해 왔다. 이날 폭설이 퍼부어 공격군에 매우 불리한데도 공격을 강행했다. 그들로서는 뒷덜미의 위협을 근몬적으로 제거하려는 작전이었다.

 이날 의병장 林중량은 11월중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민가에 후송되어 있어 의병부장 윤붕이 지휘를 맡았다.

 하루종일 계속된 공방전에서 윤붕을 비롯 윤은위, 유희룡, 유겸(柳謙), 임산여(林山麗) 등 의병부장들과 4백여 의병 전원이 옥쇄했다.

 조정은 서진의 윤붕에 사복첨정(司僕僉正)을 추서하고 살아남은 동진의 차은진(車殷珍)형제를 서산과 청도(淸道)군수로 각각 발령했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6월11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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