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의병전투 (14)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의병전투 (14)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1.08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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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24군 수령들 모두 도망, 백성들 日軍政 부역

이날 밤 일본군은 공격군이 소수 병력에 후속부대도 없는 것을 탐지하고 밤사이 의병군 배후에 복병을 배치하고 18일 아침 일찍 전군을 출동시켜 공격을 개시했다.

 처절을 극한 백병전이 종일 계속되었다.

 조헌, 영규, 온양현감 양응춘 이하 의병군, 의승군 거의 전원이 전사했다. 조헌의 아들 완기(完基)도 함께 죽어 고경명 부자에 이어 두번째 부자 순국을 기록했다.

 일본군 또한 전사자 시체를 성안으로 옮기는데만 3일이 걸렸다.

 의병군 전사자는 경양산(景陽山)기슭(금산군 서이면 의총리)에 한데 묻혀 ’7백의총(七百義塚)으로 불리어 내려오고 있다.

 금산성의 일본군은 9월17일 더 이상의 주둔을 포기하고 경상도 성주(星州)방면으로 철수했으며, 뒤따라 무주, 영동의 적도 퇴각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의병장 홍계남(洪季男)이 그의 아버지 언수(彦秀)와 함께 安城邑城에서 멀지않은 서운산성(瑞雲山城)에 기지를 두고 주변 양성, 안성, 용인, 진위(振威), 직산현(稷山縣) 일대를 무대로 하여 유격전 활동을 폈다. 이때 그의 나이 29세였다.

 그는 소규모 전투를 통해 용맹을 날려 경기도 일대에 명성이 높았다. 7월 어느날 그의 출진중에 일본군의 기습으로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安城읍성까지 쳐 들어가 되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큰 전투를 벌여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던것 같다.

 등잔밑이 어두운 것일까? 수도 한성을 안고 있는 경기도에 이렇다 할 다른 의병군의 봉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홍계남의 명성을 들은 조정이 그를 수원판관(水原判官)겸 기호양도 조방장(畿湖兩道 助防將)으로 임명했고 다음해 가을 영천군수겸 조방장으로 전보되어 적군에 포로가 된 백성 5천여명을 찾아 오기도 했으나 35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황해도 일대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의 1번대와 흑전장정(黑田長政 구로다 나가사마)의 3번대가 5월17일 임진강에서 저항하는 김명원의 조선군을 격파하고 북상, 개성을 거쳐 평양까지 진격한뒤 당초 점령 계획대로 흑전장정의 3번대가 다시 남하하여 해주에 주둔하면서 황해도 일대에 군정(軍政)을 펴고 있었다.

 임진강 방어선이 붕괴된 뒤 황해도 24군의 수령들과 각 진(鎭)의 장령들이 모두 섬이나 산속으로 도망가 버리고 텅비어 버렸으며 백성들은 일본 점령군이 발급해준 첩문(신분증)을 얻어 가지고 부역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연안부성(延安府城)만이 해주와 개성의 중간 지점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어 일본군이 진주하지 않고 있었다. 연안은 북쪽 최대의 연백평야가 있는 곡창지대였다.

 전쟁이 터질때 이조참의(吏曹參議)에서 물러난 퇴우당(退憂堂) 이정암이 조정의 일행을 따르지 못하고 노모와 가족을 거느리고 피난길에 올라 황해도 해주·평산 등지를 헤매고 다니다 8월22일 백천에 이르렀다.

 이정암이 여기서 김덕성과 박춘영 등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고 연안부성으로 와 송덕윤, 조광임, 장응기 등과 의병을 모으이 5백여명에 이르렀다. 연안성에는 백성 2천여명이 있었다.

 왕세자 광해군(光海君)이 이정암의 기병 소식을 듣고 그를 황해도 초토사(招討使)로 삼았다.

 이정암은 1541년(중종 36년)에 사직서영(社稷署令) 이탕(李宕)의 아들로 한성에서 태어나 21세 문과 급제, 28세 양주목사에 올랐고, 바로 이곳 연안부사, 가까운 평산부사를 지냈으며, 47세때는 동래부사로 있으면서 일본사신으로 들어와 전쟁이 터진다고 떠들고 다닌 귤강광(橘康廣)을 맞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그는 청백을 바탕으로 백성을 보살펴 추앙을 받았다.

 그무렵 한성 이북 황해 평안 특히 함경도 지방에서는 평소 관원들의 포악과 조정의 불공평한 인사로 불만이 높아 민심이 크게 이탈해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수령방백들이 모두 도망친 것도 민심의 보복을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6월3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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