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전북문학기행> 5. ‘천사 바이러스’
<2020전북문학기행> 5. ‘천사 바이러스’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5.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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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동의 고물상과 골목길, 주민센터 사이마다 천사를 지키는 마음
노송동 주민센터 뒤편에는 얼굴없는 천사를 기리는 공원과 기념비가 조성됐다/이휘빈 기자

 2019년 12월 30일 오전 10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주민센터 인근 ‘희망을 주는 나무’밑에 종이박스를 두고 갔다”고 전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나갈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약 1분 남짓이었지만 종이봉투는 없었다. 경찰은 센터 주변 CCTV를 분석해 추적, 4시간 후 대전 유성과 충남 논산서 절도범 일당 2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범행 3일 전부터 노송동부민센터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얼굴없는 천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노송동 천사의 따뜻한 마음을 노린다는 이야기는 가슴 아프면서도 이것이 실제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2014년에 쓰인 희곡 역시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의 얼굴과 성금’에 대해서 얘기한다. 실제로 일어난 절도사건과 달리 이 희곡은 사람 마음이 상하고 외지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듯 하다가, 못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며 각자 내면의 천사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곽병창 작가가 펴낸 2018년 ‘억울한 남자’에 실린 ‘천사 바이러스’는 2014년 이지현 작가가 쓴 ‘노송동 앤젤’을 기초로 곽병창 작가가 다시 썼다. 제자가 먼저 쓰고 스승이 각색한 이 작품은 노송동의 고물상과 근처 고시원, 골목길, 천사비(碑)를 배경으로 다뤘다. 희곡은 2014년에 무대로, 2017년에는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성준 감독이 영화‘천사 바이러스’로 발표했다.

노송동 골목들 사이를 지나가면 날개모양 표지판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노송동 천사길은 2000년 4월부터 매년동안 기부한 얼굴없는 천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이휘빈 기자
노송동 골목들 사이를 지나가면 날개모양 표지판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노송동 천사길은 2000년 4월부터 매년동안 기부한 얼굴없는 천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이휘빈 기자

 노송동주민센터를 따라서는 천사날개들이 곳곳에 그려져있다. 작은 골목길과 담벼락에 상관없이 천사 날개는 이 마을의 상징처럼 됐다. 2009년 노송동 주민센터 뒤쪽에 천사공원을 조성한 이래로 천사의 모습들과 웃는 얼굴들은 노송동을 수놓았다. ‘노송동 천사’는 이제 마을의 자부심이 됐다. 주민센터 인근 주민은 “그 차가 참 수상했다. 목장갑으로 번호판을 가려놨는데 생각해 보니 목장갑을 번호판에 말리겠느냐”며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이지 못해 이야기 많이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주민들은 ‘천사’를 지켰다”고 말했다.

 노송동 동사무소를 중심으로 고물상들은 3개 정도 있다. 고물들은 대체로 종이와 철물, 플라스틱으로 나뉘었다. 난잡하게 쌓여있는 고물들은 햇살 속에서 참선하듯 고요한데, 이 고요함은 노송동 마을의 고요함과 닮아있다. 희곡에서는 이 고물상들 앞에서 온갖 옥신각신이 벌어진다.

 이지현 작가는 “노송동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 동네의 고물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작가는 “고물상은 낡고 버려진 물건이 많죠. 뒤죽박죽 얽힌 물건들과 그 물건마다 사연이 있을 테니 그중 값진 것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요. 이런 것들이 사람 냄새 많이 나고 정이 가잖아요. 그 고물상이라면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아 그곳을 배경으로 글을 썼어요”라고 설명했다.

 희곡 속에서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으로 이어지는 평범하고 상처 많은 사람들의 나눔 역시 얼굴 없이 이어진다. 이를 밝히려는 전직 형사의 발품팔이와 취조 탐문은 어설프고, 결국 얼굴 없는 천사의 정체는 궁금증으로 남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나눔으로 번진다. 이 마음들이 값지기에 희곡을 읽다보면 천사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날개짓처럼 사라진다. 나눔이 성과와 공로가 되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감춘 따뜻한 마음은 작년에 위협을 받았지만, 이 희곡과 같이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할 때 정말 천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올해 세밑의 천사들을 기대하며 천사비를 향해 오래 기도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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