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북문학기행> 16. 회현면은 하느님의 캔버스 같다 - 박태건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2020 전북문학기행> 16. 회현면은 하느님의 캔버스 같다 - 박태건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11.01 12: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산시 회현면의 들녘은 하늘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 이휘빈기자
군산시 회현면의 들녘은 하늘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 이휘빈기자

 군산시를 둘러싼 논들에 황금빛 물결들이 사라진 사라졌으나, 남은 자리에는 여전히 가을 햇볕이 한뎃잠을 곤히 자고 있다. 수확을 끝낸 이 일대는 이제 누런 벼밑둥들과 푸른 하늘의 대조가 선명하다. 인근 농가의 작은 집들과 회현초교, 회현중학교에 감을 들고 있는 감나무들은 고즈넉하다. 자동차로 이 길을 달리면,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를 마주하다 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단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수채 풍경화의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박태건 시인이 쓴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에 실린 시 ‘비오는 들녘’은 이 정경을 사계절을 다룬 다큐멘터리처럼 응시하고 있다. 시는 가을녘이 아닌 봄과 여름 사이의 빗물과 푸르른 논에 대해 썼지만, 그 배경은 ‘수평선에서 지평선으로/ 구름이 풀리는 걸 보면 / 세상에 가둬 놓을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 등의 첫 연에서 더욱 상세하게 드러난다.

 박 시인은 군산시 회현면에 살고 있다. 그는 회현면에 대해“이 넓은 들이 하느님의 캔버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법 같은 신비가 일어난다”며 웃었다. 그는 이 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지만 문인들 중 가장 오래 이 공간을 거닐고 관찰했다. 박 시인은 “겨우내 비어 있던 들에 어린 모를 심으면 자라서 결실을 맺고, 사람들에게 주고는 다시 빈들로 돌아간다 이런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진 것 다 내주는 어머니’가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군산시 회현면의 들녘은 하늘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 이휘빈기자
군산시 회현면의 들녘은 하늘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 이휘빈기자

 박 시인은 아직 이른 봄의 회현면의 들도 찬양했다. 그는 봄철에 물을 채운 무논이 마치‘생명의 원고지’ 같다고 표현했다.“글을 쓰기 전 빈 원고지처럼, 물이 가득 채운 들에는 무엇을 심든지 어떻게든 자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인의 회현면 예찬은 전북 사랑과 맞닿아 있다. 박 시인은 전북도에 “전북은 한국인의 마음의 고향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며 “우리 지역은 비록 오랫동안 소외되었지만, 덕분에 순수한 생명의 힘이 보존되었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도시사람들에게 전북은 정신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군산시 회현면의 들녘은 하늘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 이휘빈기자
박태건 시집

 박 시인은 평소에 시를 쓰고 싶은 순간에 대해 “서글품이 느껴질 때 시가 나온다”고 말했다. 시인은 ‘슬픔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함’을 짚으며 “작품 비닐봉투의 경우에는 작고한 스승님이신 하정일 평론가의 기일에 썼다”라며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한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설명했다.

 시인이 말한 전북의 힘과 슬픔은 지평선처럼 맞닿았고, 아름다운 풍경에서 간혹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 이상함은 아닐 것이다. 멍들고 다친 마음을 군산 회현면의 드넓은 평원에 놓으며, 슬픔을 흘려보낸 곳에 새 싹이 돋을 것이라는 희망이, 돌아오는 길에 잔잔히 차올랐다.

이휘빈 기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