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승은의 ‘열화되다’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승은의 ‘열화되다’
  • 송민애 기자
  • 승인 2013.12.30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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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화되다

-이승은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 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

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

딱 그만 크기의 추를 세우고

조그맣게 서 있다

저 추가 어떻게 뜨거움을 보여줄 것인가

작년 봄 2쪽 그즈음과 같은 모양새여서

땅이 열렸을 때부터 생긴 약속이라고

얼추 들은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넘나드는 순간

추가 넘어졌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매화꽃 일생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도

화르르 소란스럽다

단 한 개의 귀를 지닌 추는 냉정을 잃고

물기에 젖어 파리한 소리는 적막을 뚫고

꽃 이파리 하나 열린다

열화되지 않은 꽃은 없으리

바닥 바닥으로만 음각했던

우리들의 희망이 달리 드러난 것이다

여러 번 꽁꽁 얼어 있던 약속이

심장 속 온도에 팔딱거리는

작은 기립을 지지한다

쉿! 다음 쪽 봄꽃도 뜨거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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