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19> 차의 길 22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19> 차의 길 22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2.03.20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밭에 활짝 핀 찻잎.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기세가 매섭고 3월에 내린 하얀 눈은 따뜻한 차 한잔을 생각나게 한다. 3월 중순이니 작년에 만들었던 햇차가 거의 떨어져 더욱 그러하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이 크고 작든 간에 그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기다림은 이루어질 수 있음을 품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내일을 준비하며 꿈을 키우고 마음을 살찌우는 시간과도 같다.

  차인(茶人)으로 손을 꼽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년간 강진 유배지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500여 권에 달하는 저작을 남겼다. 정약용에게 강진 유배 생활이 있어 다산이라는 호를 얻었을 것이다. 1805년 만덕사 주지 아암 혜장(1772~1811)과 만남으로 인해 다산은 고질병인 체증을 다스릴 수 있었다. 다음은 1805년에 지은 시로 「혜장이 나를 위해 차를 만들었다」라는 시이다.

 

  옛날 문동은 대나무를 탐했고

  지금의 탁옹은 차에 빠졌네.

  더구나 그대는 다산에 사니

  산 여기저기 자순차 돋았으리.

  제자 마음 씀은 자못 후하건만

  선생의 예법은 너무 냉랭하구려.

  백근을 준대도 마다하지 않을 터

  두 꾸러미 다 베풀면 어때서.

  술도 아닌 다음에야 한 병만으로

  어찌 취하겠는가.

  유자휘의 찻잔은 이미 비어있는데

  미명의 돌솥을 그냥 놀리란 말인가.

  나의 이웃들은 곽란과 이질이 많은데

  빌리러 오면 장차 무엇으로 구제하리오.

  믿노라, 푸른 시냇가 달이

  구름 헤치고 맑은 얼굴 내밀 것을.

 

  차가 많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혜장은 이미 차를 만들어 차가 풍족한데, 그의 문도 색성이 다산에게 차를 보냈다는 이유로 보내주지 않자 장난스럽게 차를 구하는 시이다. 이웃들이 곽란과 이질에 고생하고 있어 백근이라도 사양하지 않는다고 차 욕심을 부리고 있다. 다산은 귀양가 1806년까지 동문 밖 주막집에 방을 얻어 살았다. 그의 유배 생활은 농민들의 고달픔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그의 저술은 백성에 대한 마음 씀으로 나타났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모든 것은 숙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틱낫한(1926~2022)은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이 순간을 잘 돌보고 가꿀 때 과거의 힘든 것들을 변화시켜 좋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즉 마음을 다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몸과 마음을 챙겨 스트레스나 긴장을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무엇이든 익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게 한다면 우수함만을 기대하는 힘든 사회는 초래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주변을 돌보는 법을 배우며, 겉으로 드러난 우열만이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따뜻한 차 한 잔과 같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