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14> 차의 길 17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14> 차의 길 17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1.12.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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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서유구(1764~1845)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농정가(農政家), 저술가이다. 호는 풍석(楓石)으로 정조의 지우(知遇) 아래 학문적 정치적 성취를 이뤘다. 정조가 승하한 후 낙향하였으나 다시 관직에 복귀하게 된다. 그의 학문적 토대는 할아버지 서명응(1716~1787), 아버지 서호수(1736~1799)로 이어지는 가학(家學)과 박지원·이덕무·박제가 등 북학파들의 학문적 경향, 그리고 청(淸)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농촌 생활의 체계화를 위한 저작 필요성을 느낀 중요한 계기는 35세에 순창군수로 있을 때인 듯하다. 농서(農書)를 구하는 정조의 윤음(綸音)에 접한 후 전국적인 농서를 정리, 편찬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훗날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편찬하는 계가가 되었다. 『임원경제지』는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전래된 853종의 분야별 전문 서적을 16지(志) 28,000여 항목과 113권 53책으로 집약된 책이다. 벼슬하지 않고 임원에서 살아가는 방도를 모은 책으로 임원의 삶에 대해 실제적으로 기술한 책이다.

  16지의 구성에서 차에 관한 내용은 「만학지」·「정조지」·「이운지」 편에 기록되어있다. 차나무의 재배와 제다법, 음청류(飮淸類)로써 차, 차와 다기, 차를 다루는 물 등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차와 관련된 내용은 중국의 다서(茶書)를 인용하고 있다. 서유구의 차와 관련된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숙부인 서형수의 「풍석암장서기(楓石庵藏書記)」에 의하면 서유구가 젊은 시절 머물렀던 용주(蓉洲)의 ‘풍석암’에 차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용주는 반듯한 정원에 돌을 쌓아 계단을 놓고, 그 위에 단풍나무 10여 그루로 아름다운 장막을 이룬 곳이다. 계단 아래에는 몇 이랑의 차밭이 봇도랑과 밭두둑을 서로 교차하고 있다. 계단 아래 5~6걸음 떨어진 곳에 안채를 등지고 서재를 이었으니, 그윽하고 맑은 분위기에 거문고와 서책으로 기둥을 괴인 곳이다. ‘풍석암’ 이라고 편액한 것은 그 곳의 실경과 고사를 기록한 것다. (후략)
 

  서재 주변의 아름다운 조경과 맑고 그윽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계단 아래 펼쳐진 단출한 서재의 서책과 거문고 거기에 걸맞는 풍석암이라는 편액, 책과 차밭이 어울어져 있는 정원이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용주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없으나 차밭이 있는 곳으로 보아 따뜻한 곳이 아니었나 싶다. 용주에서는 와병 중이던 조모를 따라 3년간 기거하며 육예(六藝)를 익혔다. 풍석(楓石)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도 이시기다.

  서유구는 장서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풍석암장서기」를 보면 그 면모를 알 수 있다. 서유구는 집이 본래 가난하여 모아둔 책이 한 상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지식은 나날이 발전하였고 또 책을 모으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대(臺)를 지어 그것을 떠받들고 암(庵)을 지어 보관하니 주렁주렁한 것은 마치 이어진 구슬과 같았고 아름다움은 늘어선 별들과 같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장서가 펼쳐져 있는지 짐작이 간다. 또 아침저녁으로 그곳에 머물며 기뻐하였고 다른 일을 일삼지 않았다고 기록된 점을 보면 서유구의 집념을 알 수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게 된 장서를 바탕으로 그는 방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러한 책들은 모두 『임원경제지』 저술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당시 저작된 책들이 “정치와 교화에 필요한 책은 많으나, 향리에 살면서 지취(志趣)를 기르는데 필요한 책들이 드물다며 이에 시골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간략히 정리하여 임원(林園)이라하고 경세(經世)하는 방도가 아님을 밝히는데 주력하기도 했다. 벼슬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이 아니며 세속을 벗어나 향촌 생활의 현실적인 면을 자세하게 구성하여 기록한 뜻이 무엇일까.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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