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03> 차의 길 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03> 차의 길 ⑥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1.06.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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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월요(越窯), 청자꽃구완

 당나라 때 육우(陸羽, 733~804)가 저술한 『다경』은 광대하고 세밀하여 필히 읽어야 하는 차의 경전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면 『다경』을 빼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서이며 전문서인 것이다. 그래서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육우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흔히 한 분야의 성인을 엿보면, 어린 시절 버려지거나 고생을 하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비범한 일화를 지닌다. 이러한 고달픈 삶은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며 한 분야의 기틀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육우 역시 고상한 품격으로 통하는 차와는 달리 어린 시절은 고달픈 삶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결국 좋은 시승(詩僧)과 문인을 만나게 된다.

  본래 육우는 버려진 아이였다. 당나라 때 경릉(竟陵) 용개사(龍開寺) 주지인 지적선사가 서호(西湖)가에서 데려다 키웠다. 그는 『주역(周易)』 ‘점괘(漸卦)’의 내용에 따라 육우라는 성과 이름을 짓고, 자를 홍점(鴻漸)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육우는 지적선사 밑에서 3살 때부터 자라게 된다. 말을 더듬었으나 항상 유쾌하고 말솜씨는 좋았다고 한다. 9세 때부터 불경 공부를 시켰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비범했다. 하지만 그는 불경만이 아닌 유가 경전과 시문 에도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 했다. 지적선사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고된 일을 시켰다. 한번은 소를 치는 일을 맡겼는데, 소의 등에 대나무 가지로 글씨를 쓰곤 했다고 한다. 이렇듯 육우는 어리지만 자기의 주관이 뚜렷하여 마음먹은 것은 꼭 하는 성품이었다. 이러한 열정으로 인해 그는 13살 되던 해에 절에서 나오게 되는데 결국 지적선사도 이를 막지 못했다.

  그는 절에서 나와 글을 배우기 위해 글방에 갔으나 글방의 서동(書童)들과 친구가 되기에는 부족하였다. 사실 외모도 못생겼으며 말까지 더듬었으니, 남루하고 가난한 그가 계속해서 글방공부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생계를 위해 극단에 들어가 광대 연기를 했다. 비록 말은 더듬었지만 총명하고 유머가 넘쳤던 육우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와 사색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한가할 때는 늘 그날 일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우스갯소리 모음집인 『학담(謔談)』을 편찬하였다.

  그러던 중 그 인생에 반환점을 가져오는 만남이 이뤄진다. 즉 경릉태수(竟陵太守) 이제물(李齊物)을 만나게 된다. 그는 육우의 재능과 포부를 높이 평가하여 시서(詩書)를 선물하며 화문산(火門山)에 은거하고 있던 추부자(鄒夫子) 밑에서 공부하도록 알선해 주었다. 이로 인해 육우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삶이라는 변화를 겪는다. 육우는 화문산(火門山)에서 공부하며 많은 문인과 교유하고 이들과 차 모임을 자주 갖었다.

  육우는 어린 시절 용개사에 머물 때 차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지적선사로부터 칭찬을 받곤 했다. 이러한 경험은 문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에 충분 했다. 이 당시 문인들은 대부분 차를 마시는 고상한 모임을 통해 시를 읊고 그림을 즐겨 그렸다. 육우는 이렇게 벗들과 차를 마시며 품평하고, 물을 평하며 시문(詩文)을 논하는 등 차에 대한 깊이를 더해갔다.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일어나자 그는 강남으로 피신하여 암자에 은거하게 된다. 이때 차에 관한 저술을 하게 되는데, 안진경(顔眞卿 709~784), 교연(皎然 730~799) 등 명사들과 교유하고 차에 대한 초고는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인 765년에 완성한다.

  후에 육우는 태상시에서 관직을 맡게 되나 거절하고 은거한다. 은거 덕분에 차에 관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차에 관한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 차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최초의 차 전문서적인 『다경(茶經)』을 저술(780년)하게 된다. 차의 기원과 차나무 생육환경, 차를 만드는 방법, 음다 방법, 차 도구, 물, 차를 마시는 풍속, 명차 생산지, 차와 관련된 고사 등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게 된다. 육우는 다성(茶聖), 다신(茶神), 차 박사(茶 博士)로 불리었으며 당시의 문인들은 물론 차를 즐기는 이들은 모두 이를 따라 배우고 익히려 노력했다. 이렇게 중국은 육우에 의해 차가 문화로서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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