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97> 한거(閑居)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97> 한거(閑居)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1.03.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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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봄, 주변에서 봄을 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화살촉 나무는 순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멀리서 보이는 산등선의 모양은 이미 봄 냄새를 알리고 있다. 잠시 이들과 하나가 된 듯 봄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이렇듯 늘 한가로움을 꿈꾸는 우리들, 다음은 이수광(李?光 1563~1628)의 ‘한거(閑居)’라는 시를 통해 자연의 에너지를 충전해보자.

 

  전원에 삶을 의지하니

  시골 성품 단출하여 출가한듯하네.

  한가로이 사슴과 더불어 골짜기 거닐고

  갈매기 쫓아 시냇가에 노니네.

  산속의 부귀는 산나물이 금은이요

  길가의 풍류는 꽃이 기생일세.

  숲에 노을 질 때 돌아와

  아이 불러 물 길어 햇차를 맛본다네.

 

  한가로이 전원에서 지내는 삶과 속세의 삶을 비유하며 읊은 시이다. 골짜기 사슴은 벗이 되어 같이 거닐고, 여기저기 산나물은 금은보화와 같고, 길가에 핀 고운 꽃은 기생보다 아름다워 하루를 이렇게 흥을 다하고, 노을이 질 때면 집에 돌아와 햇차를 맛본다는 전원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속에 차가있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이다,

  이수광은 병조판서를 지낸 이희검의 외동 아들로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지봉(芝峰)이다. 조선의 선조, 광해군, 인조 연간에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이조판서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그는 당쟁에 치우침이 없었고 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벼슬을 탐하지도 않았다. 광해군의 폭정에 항의하는 등 조정을 떠나있었으나 인조반정 후 다시 관직 생활을 하였다.

  그가 집필한 『지봉유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적 문헌으로 1613년 광해군 5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동대문 밖에서 거주하며 집필하여 이듬해인 1614년 7월에 편찬되었다. 총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있다. 348종의 책을 인용했으며 천문·역학·지리·역사·제도·풍물·종교·문학·예술 등의 기사를 25개 부분으로 나누어 3435조항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그는 3차례에 걸쳐 명나라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왔으며 『천주실의』를 가지고 들어와 최초로 서학을 알렸다. 서구의 문물을 접하게 된 그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자극과 지식을 소개하였다.

  「식물부」에는 차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는데, “지금 남방의 여러 고을에서 생산되는 차는 대렴이 당(唐)에서 가져온 차 종자를 신라 흥덕왕(828)이 지리산에 심게 한 것으로, 그때 심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곡우 전에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라고 하며, 한식 전에 만든 향기로운 차는 이제현(1287~1367)의 시 내용 중에 ‘맑은 향기 맡으니 화전춘(火前春)인가’라는 대목을 인용하여 그 향기로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화전춘은 이제현의 시로 “송광 화상이 차를 보내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아름다운 교유”를 읊은 시이다. 내용을 보면,

  (전략)/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나와보니/ 옥과 보다 더 좋은 신선한 차를 얻게 되었네./ 맑은 향기 맡아 보니 화전춘 인가/ 고운 빛깔을 보니 숲속의 이슬을 머금은 듯하구나./(후략)

  차는 갈증을 없애주고 눈을 밝게 하는 것으로 두 가지 효험을 갖추었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시이다. 평상시 좋은 약을 보내는 송광 화상은 정분을 못잊어 보내건만 본인은 그 공을 갚지 못해 부끄럽다는 내용도 있다. 이렇듯 화전춘의 맑은 향기 고운 색은 송광 화상과 이제현의 아름다운 교유를 볼 수 있는 시이다. 차는 선비들의 이상세계는 물론 많은 이들의 아름다운 교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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