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 -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선생
1월의 독립운동가 -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01.04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권침탈에 저항하여 분연히 일어난 호남의병
기우만 선생 영정

  기우만, 박원영, 김익중 선생은 모두 1896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의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은 호남유림의 중요 인물인 노사 기정진의 학맥을 계승하여 서양 및 일본 세력의 국내 정치문제 개입을 거부하고 왕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성,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기우만 선생은 전남 장성군 탁곡에서 태어났다. 조부 기정진의 영향을 받았으며,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최초로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기우만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義陣)을 결집시켜 회맹(광산회맹)을 하고 서울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국왕이 해산조칙을 내리자 1896년 봄을 전후하여 해산하였다. 기우만의 호남의병은 단발령의 철폐, 일본세력의 축출, 개화정책의 반대, 옛 제도의 복구 등을 내세웠다.

  의병해산 이후 기우만은 의병의 정당성을 알리는데 힘썼으며 1909년「호남의사열전」을 집필하여 의병의 활약상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박원영 선생은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강직한 성품과 기개를 타고난 박원영은 기정진에게 배우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기우만이 의병을 일으키자 바로 달려가 참여하였고 나주에서 광주로 이동한 장성의병을 맞이하는 실무를 주관했다. 의병이 해산된 이후 진위대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김익중 선생 또한 노사 기정진에게 배웠으며 사람간의 의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1896년 봄 기우만이 의병을 모으자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평소에 교류가 있던 포수들에게 참여를 독려하였고,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나주와 광주를 오가며 활약하였다.

  이후 정미조약으로 전국적인 의병 봉기가 일어나자 1907년 기삼연을 중심으로 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다. 회맹소 의병들은 거점을 마련하려 고창읍성을 공격하여 점령했고, 김익중은 고창읍성을 탈환하려는 일본 군경의 습격에 맞서다가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기우만 선생은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 박원영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김익중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