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비누
[독자수필] 비누
  • 정성수 향촌문학회장 /
  • 승인 2020.09.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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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어느 소설 첫 문장이다. 비누는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세척제로 향기가 첨가되어 방향제 역할도 한다. 방향제는 향수와 달리 특유의 정화능력과 결합하여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산뜻하게 하는 일종의 약제다. 그러나 비누는 사용 후 물질적 무게를 벗고 냄새로 변하면서 세척의 아우라Aura를 발산한다. 비누 냄새에는 욕망과 금지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비누는 지방과 잿물이 만나 비누화되어 생긴 물질이다. 말하자면 지방산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는 1956년 애경유지가 만든 ‘미향’이다. 당시만 해도 비누는 귀하고 값도 비쌌다. 그래서 ‘고급 향기’ 또는 ‘멋쟁이 냄새’로 불렸다.

  비누의 세정 원리는 간단하다. 비누 분자의 한쪽은 물에 잘 녹고, 다른 한쪽은 기름에 잘 녹는다.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의 물질인 계명활성제 덕분이다. 비누칠을 하면 기름때에 비누 분자가 붙고 물로 씻어낼 때 비누 분자가 물에 녹아 들어가며 기름때까지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름에 흡착되었던 세균이 기름과 함께 쓸려나가면서 세균 제거 효과가 발생한다.

  요즘처럼 코로나19 같은 변종 바이러스기 창궐할 때는 알코올이 섞인 세정제보다 비눗물로 손을 자주 씩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유는 비누의 지방질 성분이 바이러스 제거하기 때문이다. 카렌 플레밍Karen Fleming 존스홉킨스대 교수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지방질 막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비누와 물이 지방질 막을 녹이면서 바이러스를 죽인다는 것이다. 비누칠을 한 뒤 물로 꼼꼼하게 씻어내야 효과가 좋다. 어떤 비누든 거품을 잘 내서 30초 이상 흐르는 물에 씻어내면 세균 99% 정도의 제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고대 시대에도 비누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사치품이었다. 요즘은 비누를 대량 생산해 가격이 저렴해지고 대중화되었다. 전에는 전염병이 돌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원인은 열악한 개인위생이었다. 비누 사용이 일반화된 요즘은 매일 손을 씻을 수 있어 여러 질병 전염 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비누로 자주 손을 씻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만약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기희생을 통해 사회에 공헌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와 같다. 그러나 자기만아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일 뿐이다.

  흔히 사랑을 아름답고 한다. 이는 비누가 상대의 옷에 묻은 때를 깨끗이 세탁해주고, 몸에 찌든 때를 씻어 향기가 나게 해줌으로써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여유를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의 자세야말로 인간들이 비누에게 배울 점이다.

  햇볕 좋은 가을날 오후, 산들바람에 빨랫줄에서 빨래가 말라가고 있다. 땀에 찌들어 더러웠던 빨래들은 비누와 물을 만나 어느덧 깨끗한 옷으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비누는 수없이 제 몸을 깎으면서 닳아 가야만 가능하다. 뽀송뽀송한 옷을 입는 순간, 훅~ 향긋한 비누냄새가 코끝을 스치거든 그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비누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라.
 

정성수 <향촌문학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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