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뿌리는 삶의 근간
[독자수필] 뿌리는 삶의 근간
  • 정성수
  • 승인 2020.07.12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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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할세.’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한글로 지은 최초 서사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첫 구절이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1년 전인 1445년에 완성되었다. 세종은 ‘용비어천가’에서 사적事績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염려해 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자세한 주해를 붙이도록 했다. 용비어천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는 뿌리가 생명이다.

  뿌리가 살아있어야 나무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고목이 된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생명이 있어야 하고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뿌리가 썩지 않아야 한다. 모든 식물은 뿌리가 깊이 박혀 있을 때 튼튼한 식물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비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뿌리를 갖은 식물은 가뭄이 와도 말라죽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대나무다. 대나무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대나무는 죽순을 내밀기 시작하면 하루에 20~ 30cm씩 쑥쑥 뻗어 오르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인 나무는 뿌리와 함께 줄기도 자라지만, 대나무는 죽순이 나기 전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만 2~5년의 세월이 걸린다. 이처럼 수년 간 땅속 깊숙이 내린 뿌리 때문에 장마에도 쓰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자양분을 빨아올려 순식간에 높이 자란다. 대나무의 질긴 생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에서도, 월남 전쟁의 고엽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유일하게 싹을 틔운 식물이 바로 대나무다. 그 비밀은 땅속에서 뻗어나가는 뿌리의 견고함에 있다. 왕대나무의 땅속줄기는 길이가 무려 6km 이상이라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글 한편을 소개한다.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떨어져 흙속에 묻히고 다른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졌다. 흙 속 씨앗은 곧장 싹을 틔우고 자랐지만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그러지 못했다. 흙에 자리 잡은 소나무가 나는 이처럼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빈정댔다. 바위틈에의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태풍이 왔다. 비바람이 몰아치자 많은 나무들이 뽑혀나가고 꺾어지고 난리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는 꿋꿋했다. 흙에 있는 소나무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바위틈에 서 있던 소나무가 말했다. ‘내가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 알겠지?’ 쓰러진 소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넘어지지 않고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끝까지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무성하듯 나를 있게 한 조상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조상을 알고 나의 존재가 우연한 생명이 아니라 소중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대를 이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걸 인식할 때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행동도 진중해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종친宗親들과 교류하면서 화목하게 지낼 때 나의 좌표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오직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할 수 있는 교육이며 삶의 근간이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 사회·국가 등도 뿌리가 깊어야 한다. 특히 역사적 뿌리가 깊어야 든든하다. 깊은 역사의 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내려야 할 뿌리가 있다. 그것은 구성원들 간의 신뢰의 뿌리, 단합의 뿌리다.
 

정성수 (향촌문학회장·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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