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수필] 애비는 죽어서도 꼰대다
[도민수필] 애비는 죽어서도 꼰대다
  • 정성수
  • 승인 2020.05.07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년 어버이날 자식들에게 보내는 글

 아들아, 친구들이 애비를 꼰대라고 비웃어도 화내거나 슬퍼하지 마라.

   그래 애비는 꼰대다. 책보를 허리에 차고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총알처럼 달렸다. 밤이면 등잔불 밑에서 눈을 비벼가며 책을 봤다.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 없다는 게 애비의 평생 한이었다. 그래도 글씨를 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선생님이 퍼주는 강냉이가루는 빵이 되고 꿀꿀이죽이 되었다. 요즘이야 컴퓨터가 대세지만 애비 때는 말타기놀이 아니면 딱지치기였다. 전자계산기 같은 것은 생각치도 못했다. 주산이면 계산 끝인 줄 알았다. 머리에 기계충이 생겨도 병원은 언감생심이었다. 동네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물지게로 져왔다. 그 물로 헛간에서 때를 벗기고 한겨울에는 대야의 얼음을 깨고 세수를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따라 오일장에 가고 팥죽집 앞에서 침만 삼키다 돌아왔다. 측간에서 똥을 싸고 지푸라기로 밑을 닦았다. 소꼴을 베면서 꽈리를 튼 뱀에 놀란 적은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란다. 검정고무신에 땡감 물을 바르면 출입 신발이었고 그냥 신고 논밭에 나가면 흙고무신이었다. 

  꼰대들은 월남전에 목숨을 걸고 독일 탄광에서 석탄을 캤다.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땀 흘리며 잠을 못잔 꼰대들이 있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애비는 사글세 단칸방에서 신혼을 보냈지만 너희는 아파트에 자가용으로 시작하지 않았느냐?

아들아, 부디 캥거루족은 되지마라. 어미 캥거루도 언젠가는 죽고 만다. 애비는 죽어서도 꼰대다.

정성수(시인·향촌문학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