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힌 의병들
어둠을 밝힌 의병들
  • 박일천
  • 승인 2020.03.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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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특집)

 올해가 3·1독립만세운동 백 주년이다. 방송 매체마다 특집으로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름만 들어도 업적을 알 수 있는 안중근, 김구 선생은 물론이고 의병들의 구국 활동까지 찾아내어 밝히고 있다. 잊혀가는 역사를 후손들에게 재조명하여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얼마 전 블라디보스토크 답사를 가서 새로운 독립 운동가를 알게 되었다. 연해주에 정착하여 거부가 되어 조국의 의병 활동을 돕던 최재형은 안중근의 후원자가 되어 총기를 대주고 훈련을 시켰다.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을사늑약의 원흉을 처단한다. 최재형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우리 역사의 뒤안길에는 조국을 위해 항쟁하고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도처에 숨어있다.

 내 고향 전라북도에도 긴 세월 이끼에 덮여 잊힌 독립운동가가 있지 않을까. 관심을 가지고 독립 운동사를 뒤지다가 우리 지역 순창, 고부 등 전라남북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신보현’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는 1868년에 태어났다. 신보현은 어려서 친구들과 대나무로 칼싸움 놀이를 할 때도 맨 앞에서 대장을 하였다. 덩치 큰 아이가 약한 동무를 때리면 힘센 애들과 싸우다 두들겨 맞기도 하지만, 언제나 허약한 친구를 도왔다. 의협심이 강한 신보현의 심성에 동무들은 그를 따랐다. 이렇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은 성장하면서 나라를 구하려는 충정으로 익어갔다.

 신보현이 청년이 될 즈음 1894년,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19세기 말 조선의 정세는 풍전등화였다. 청과 일, 러시아 등 외세가 호시탐탐 조선의 침탈을 엿보고 관료들은 수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동학혁명이 삼남으로 퍼져갈 때 일본군은 왕실을 돕고 동학당을 몰아낸다는 핑계로 궁궐에 난입한다.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는 전주곡인 듯 일본군이 쏘아대는 총성이 밤새 경복궁 담을 넘나들며 조선 땅에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진다.

 전라도 고부 땅에서 조병갑의 폭정에 항거하여 전봉준의 주도로 동학농민혁명이 맨 먼저 일어났다. 고부와 가까운 순창에 살던 신보현도 평소에는 농민이지만 관군이 일본군과 합세하여 백성을 공격할 때 가만히 있었을까. 조선의 피 끓는 젊은이라면 그도 동학농민군에 섞여 일본군에 항거했으리.

 1894년 동학혁명 이후 1909년 후반까지 국권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호남지역에서는 최익현, 임병찬을 중심으로 ‘태인 의병’이 결성되어 최초로 항일 투쟁을 벌였다.

 1908년 5월부터 신보현은 순창, 고부 등 전라남북도 일대에서 100명 정도의 의병을 거느리고 일본군을 기습하였다. 이에 악랄한 일본 군경은 밀정을 두고 의병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불응하는 농민은 강제로 연행하여 고문을 하는 등 극도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의분을 참지 못한 신보현은 1908년 11월 26일, 순창군 하치면에서 약 2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 기관을 기습하여 그들의 무기를 탈취였다. 의기충천한 신보현 의진(의병대)은 이진사와 정해석 의병장을 선두로 150명이 총기를 소지하고 무장투쟁에 나섰다.

 1909년 4월 5일 신보현은 순창군 일대에서 이성화 의진과 합세하여, 가포곡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일본 군경 수십 명을 격파하였다. 이성화 의진은 순창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아 신보현 의진에게 군량과 무기를 공급해 주기도 했다. 신보현 의병장은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과 5월 19일 고부군 발알면에서 일본군과 싸워 그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어서 6월 7일 서부면, 6월 20일 우덕면에서도 일본 토벌대를 무찔러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에 고무된 신보현 의진은 1909년 11월에는 정읍ㆍ순창 일원에서 수시로 유격 활동을 벌여 일본 기관을 교란했다. 12월에는 정규군 일본 토벌대에 맞서 장렬히 싸웠으나, 수적인 열세로 신보현은 안타깝게 일본군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그의 행방은 묘연하나 미루어 감옥에서 순국하지 않았을까.

 우리 민족의 쓰라린 일제 강점기에 가슴 아프지 않은 대목이 있으랴만. 우리가 그 슬픈 역사 속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긴 한민족의 불의에 맞선 투쟁이다.

 민족생존의 싸움에 있어 죽음은 어떤 패배도 치욕도 아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명예라는 것을 일깨워 준, 의병들의 애국심은 잠자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두드린다. 자신의 안위는 뒤로 미루고 오직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선열들의 구국 투쟁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항일 투쟁한 그들의 독립운동이 밑거름되어,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으로 뻗어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 아닐까.

 오늘이 개천절이라 대문에 달아 둔 태극기가 바람결에 아름답게 펄럭인다. 자유롭게 태극기를 내걸 수 있는 내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가. 오늘 따라 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푸르다.

 박일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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