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 정선옥
  • 승인 2019.07.23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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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배낭여행]#2. 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알마티 한국어 교육원 교육자료들

 #.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우즈베키스탄의 마지막 행선지로 한국문화예술의집에 갔다. 고려인의 전통문화 보존과 계승을 위한 곳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4월 20일에 개관을 마쳤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인 이곳에서 고려인에 대한 뮤지컬로 공연을 하게 된다면 더욱 뜻깊을 것 같다.

 짐가방을 들고 바깥으로 나오자 회색 고양이가 뒤를 졸졸 따른다. 며칠 동안 정이 들었다며 아쉬운 듯 고개를 연신 비벼댄다. 골목을 나서자 살구나무는 몇 개의 살구를 바닥에 떨궈 놓았다.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살구나무의 이별의 말 또한 내 가슴에 꽃 한 송이를 심어놓는다. 우즈베키스탄과 이별을 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떠난다.

국립고려극장 전경
국립고려극장 전경

 #. 알마티 한국교육원과 고려극장

 카자흐스탄의 거리는 우즈베키스탄과 다르게 이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알마티 한국교육원은 한국대사관보다도 먼저 1991년 독립되던 해에 생겼다. 고려인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독립을 기점으로 서둘러 교육원을 짓지 않았을까. 이곳엔 460석 규모의 대극장이 있다. 시설은 오래되었고, 바닥도 닳아 있었지만, 그 자체가 역사인 것 같아 뭉클했다. 한국에서 파견된 알마티 한국교육원의 교장과 교감은 고려인들의 위상과 자존심은 대단한 것이라 했다.

알마티 한국어 교육원 전경
알마티 한국어 교육원 전경

 나무들이 가득한 길을 지나면 모퉁이를 돌아 커다란 나무 뒤로 고려극장이 보인다. 타국에서의 공연장이어서인지 커다란 성처럼 거대해 보인다. 이곳이 고려인들의 한을 담고 노래한 곳이다. 아쉽게도 고려극장을 방문한 날은 단원들이 모두 한국으로 공연을 떠난 상태라서 만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고려인이라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문화의 힘을 여전히 지키고 있음은 느껴졌다.

우슈토베 가는길 풍경
우슈토베 가는길 풍경

 #. 우슈토베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말을 마세요.

 알마티에서 우슈토베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끝없이 이어진다. 요즘은 길이 4차선으로 뚫리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서너 시간을 달려야 한다. 가는 길은 그야말로 카자흐스탄의 끝없이 이어지는 대초원이 펼쳐진다. 자동차로 이십 여분 더 가면 바슈토베에 다다르면 아무것도 없는 언덕을 지나 비석과 무덤자리가 보인다.

우슈토베 정착지 기념비
우슈토베 정착지 기념비

바슈토베 언덕에 올라서니 비로소 이곳이 고려인들이 경작하며 살던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뜻 보이는 초록물결 사이로 논의 구획이 보이고 쓰고 있는 모자를 날려 보낼만큼의 바람이 쉼 없이 거칠게 스친다. 가시덩쿨이 가득한 척박한 땅을 옥토로 만드기까지의 시간을 상상하니 사뭇 감동스럽고, 고려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편히 쉬시라는 마음을 전한다.

우슈토베 고려인 공동묘지에 비석
우슈토베 고려인 공동묘지에 비석

비석에는 ‘이곳은 원동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정착지이다.’ 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공사중으로 비석은 뉘여있고, 트럭과 장비들은 분주하다.

 우슈토베에 다시 돌아와 고려인이 사는 마을에 ‘조 베니에라’ 라고 하는 어르신댁에 방문했다. 오래된 낡은 옛날 한복 마고자를 보여주셨는데, 낡아서 솜이 삐져나온 누빔 옷을 보니 그 옷으로도 감싸지지 않았을 그때의 추위가 휙 지나가는 듯하다. 1937년 처음 강제이주한 후 척박한 땅인 바슈토베에 와서 토굴을 파고 지내는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아까 본 고려인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고려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원동마을이라 한다. 그들이 원래 살았던 동네란 뜻이다. 또 다른 고려인은 집의 온돌과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쓰는 조그만 앉은뱅이 의자를 보여주시며 자랑스러워했다. 키가 크신 그 어르신은 어머니는 독일인이고 아버지는 고려인이라고 했다. 우리는 맛있는 과일 잼과 빵, 뜨거운 차를 연신 마시며 우리 민족의 피가 이렇게 뜨거운 것이었던가를 땀으로 흠뻑 뿜어내며 더욱 뜨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슈토베를 떠나 다시 알마티로 돌아오는 길의 초원이 가는 길보다는 희망적으로 보인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면 혹한기 무서운 밤도 마냥 무섭기만 했겠는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듯이 새로운 날이 올 거란 기대가 꿈과 함께 찾아들기도 했을 것이다.

 여행은 짧았지만 가슴을 꾹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과 우리들이 놓치고 살았던 조국과 혈통에 대한 자긍심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고마운 여정이었다.
  

 글 = 정선옥(완주연극협회)

 

 ※‘예술배낭여행’은 수요일자 문화면을 통해 격주간으로 완주문화재단의 웹레터와 동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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