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편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편지
  • 정선옥
  • 승인 2019.07.09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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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배낭여행]#1.
출발전 익산IC터미널 대합실에서 함께한 세 사람
출발전 익산IC터미널 대합실에서 함께한 세 사람

 완주문화재단이 펼치는 예술인 국제교류지원 프로젝트 ‘예술배낭여행’이 올해로 2년차를 맞았다. 이 프로젝트는 국외 예술명소 탐방, 국제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레지던시, 연수 등의 참여를 지원하는 완주문화재단 예술인 국제교류지원 프로젝트다. 본보는 이들 예술인들의 값진 경험을 일회성으로 사장시키기 보다는 지면을 통해 공유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첫 순서로 완주연극협회의 권아남, 정상식, 정선옥씨가 함께한 우주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의 일정을 따라가본다.<편집자주>  

 #.강제이주된 고려인, 80년의 역사의 길을 가보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일컫는다. 러시아 연해주의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던 조선인들은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갑작스레 17만 2천명이 이주를 당하게 된다. 횡횡한 곳에서도 고려인들은 21명의 노력영웅을 배출하고, 300만평의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했다.

 극단오락은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의 역사를 맞아 고려인의 삶을 재조명하고,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떠났다. 완주연극협회의 대표 정상식, 작가 정선옥, 배우 권아남 세명이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여정을 나섰다.

고려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장라이다 할머니가 북한에서 가져온 춘향가 레코드판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장라이다 할머니가 북한에서 가져온 춘향가 레코드판을 보여주고 있다.

 #. 아리랑 사연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첫 일정은 타슈켄트의 아리랑요양원을 가는 것이다. 이곳에서 10년동안 근무한 김나영 원장의 고려인 이야기를 들으며 몇 번이나 같이 한숨을 쉬고 혀를 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계신 어르신 한 분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오디오디스크를 들려주셨다. 북한에서 제작된 뮤지컬 춘향가가 울리며 묘하게 가슴 밑바닥을 울린다. 이어 어르신이 직접 가느다랗고 애절한 목소리로 창가를 들려주신다.

 “기다리자니 천 리는 먼 마음 어서 가래도 더디 가는 이 밤

 내일이면 그리운 님이 오시려오 오시오 오시오 어서 오시오

 안 기다리자 마음 먹었다가도 돌아올 그이 생각을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지요

 오시려오 오시오 어서 오시오 만나서 보다 더 기쁠 터이면 일평생 기다리며 지내지요

 우째든지 오고야만 님이여 오시오 오시오 어서 오시오“ 

 #. 무궁화가 가득한 고려인 마을_치르치크 

 가는 길에 가로수가 무궁화다. 뽕나무랑 살구나무도 많이 보인다. 무궁화와 접시꽃이 밝게 핀 앞에서 치르치크 한국어교육원원장인 차스베틀라나를 만났다. 한국어를 그리 오래배우지 않았음에도 유창하게 구사하며, 다양한 고려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치 시골집에 온 듯이 강아지가 반기고, 옆에는 닭장과 고추, 배추, 열무, 가지, 물외, 토마토, 파, 상추 등 텃밭이 있다. 1937년에 연해주에서 오신 방태산 어르신은 당시엔 먹을게 없어 밥에 물을 말아 간장만 넣어 먹기도 했지만, 46년간 러시아 기관에서 일을 해 지금은 연금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1988년 한국에 갔는데, 고려인으로서 한국이라는 나라이름은 낯설기도하고 한편 서운하게도 느껴졌다고 한다. 어르신 옆에는 한국식 장례를 진행하는 김보리수란 분도 함께 계셨다. 이 먼 곳에서도 전통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으로 느껴졌다.

 또 다른 집 앞에도 무궁화가 있었다. 마치 고려인의 표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독일어를 전공, 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통역과 관련 정부프로젝트를 진행한 소위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고려인은 머리가 좋고, 주로 리더나 관리직을 맡는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녀가 소개한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 역시 한국의 모든 것이 좋다고 했다. 과연 우리 중에 누가 한국의 모든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스스로 성공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 스스로의 성공이 민족의 기질덕분이라 믿으며, 자긍심과 자존감, 그 믿음이 고려인들의 저력인 것 같다.

 

 글 = 정선옥(완주연극협회)

 

 ※‘예술배낭여행’은 수요일자 문화면을 통해 격주간으로 완주문화재단의 웹레터와 동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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