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인술과 봉사를 실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신과 동료, 스승, 후학에 대한 명예와 양심을 지키겠다는 내용도 선서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인술과 양심에 따라 선의만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한 의사들 사이에서 ‘전공의 상습 폭행사건’ 같은 적폐가 근절되지 못하고 왜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문제의 원인은 오랫동안 내려오던 의학교육의 폐쇄적 구조에 있다고 보인다. 철저히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도제식 교육의 특성, 의대·인턴·전공의·세부전문의 팰로우쉽 등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쌓듯이 이루어지는 단계별 통과시험과 논문들, 좁은 의료계의 인맥까지 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스승과 선배는 절대적 권한과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이 부당한 폭력에 맞서 이겨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너무 오랫동안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뿌리 깊은 관행은 죄의식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전공의 시절 폭력에 고통받았던 자신도 나중에 똑같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는 어느 의사의 고백이 그걸 말해주듯 그 원인은 오랜 기간 구조화된 토양과 폐쇄적인 조직문화 그리고 무조건 복종의 군대식 수련 교육체계에 있다. 이런 체계에서 전공의는 자신의 진로 및 생사여탈권을 쥔 지도교수와 선배 의사의 폭력, 갑질 행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 직업의 특성과 생명을 다룬다는 수련과정의 엄중함을 이해한다고 해도, 결코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폭행을 근절해야 하는 것은 전공의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진료 일선에 있는 전공의들이 몸에 피멍이들 정도의 상습적 폭력에 시달려서야 환자들이 안심하고 진료받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지난 2015년에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전공의 특별법)을 국회를 통과하여 현재 실시중이다. 이 법은 교육과 수련이라는 명분으로 주당 수백시간(절대 과장이 아니다!)이 넘는 근무와 당직을 해오면서 이를 당연시 여기던 의료계의 대표적 적폐를 없애기 위해 오랜 기간 전공의와 대한의사협회에서 노력 끝에 만든 법으로 이는 전공의 자신뿐만 환자들의 안전한 진료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면, 이런 부끄러운 관행과 적폐들이 저절로 사라지고 개선될 것으로 믿었으나 현실은 법 따로 주먹 따로인 듯하다. 이제는 전 의료계가 나서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러한 적폐를 청산할 의지를 전공의가 아니라 기성세대 의사들이야 보여야 한다. 자체 정화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이 내 지위를 지키는 일, 자신들의 수입증감에만 연연하고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하면서, 전문가로 대접만 받으려 하는 집단은 적폐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의사들과 선배의사들이 모두 힘을 합쳐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끊어내고 스스로 자정과 개혁에 나서야 할 때이다. 이것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의료계가 그토록 주장하는 전문가로서 소신진료와 올바른 의료개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