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폭행’ 의료계의 고질적 적폐! 이제는 끝내야 한다.
‘전공의 폭행’ 의료계의 고질적 적폐! 이제는 끝내야 한다.
  • 김형준
  • 승인 2017.11.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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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의과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대학생활 안내라는 명분아래 ‘오리엔테이션’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이름은 그럴 듯했지만 실상은 속칭 ‘운동장 뺑뺑이와 줄빠다(?)’ 행사로 선배들에게 절대복종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정신교육(?)과 함께 열외없는 ‘빠따’가 이루어졌다. 대학 1학년 당시 87년 민주화 운동이후 새 학기를 맞은 대학은 서슬 퍼런 군사독재를 굴복시켰다는 자부심과 새로운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 가득하던 시대였으나 의과대학만은 그런 사회분위기에도 언제인지 모를 시절부터 내려오던 악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 의과대학 안에서도 이런 식의 노골적, 합법적(?) 폭력은 점차 없어졌으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엄연한 의사가 된 뒤에도 상당히 기간이란 이런 기막힌 암묵적인 폭력들을 종종 목격하게 되었다. 인턴시절 인턴들 사이에는 ‘모전문과 의국에 모교수님 자리 앞에는 재떨이같은 절대 무거운 물건을 놓지 마라’가 중요 인계사항으로 컨퍼런스나 회의 중 화가 나면 잡히는 대로 집어던져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소문이 공공연할 정도였다. 이러한 의사간 폭력은 특히 전공의로서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며 주로 스승·제자간, 선후배간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최근까지도 이런 악습이 계속되고 있었던 듯하다. 이번에 도내의 모 대학병원을 포함하여 전국의 유명한 병원들에서 전공의에 대한 폭력문제가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심지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될 정도였다고 한다. 올해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전공의 1,768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자 중 “수련 중 신체적 폭행을 당한 적 있다”는 사람은 20.3%에 달했다. 폭행 가해자는 환자나 보호자(11.5%)·교수(5.9%)·상급 전공의(4.9%) 순으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당한 폭행 사례를 제외하면 10명 중 1명(10.3%)은 같이 근무하는 동료 의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그 내용을 보면 인술과 봉사를 실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신과 동료, 스승, 후학에 대한 명예와 양심을 지키겠다는 내용도 선서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인술과 양심에 따라 선의만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한 의사들 사이에서 ‘전공의 상습 폭행사건’ 같은 적폐가 근절되지 못하고 왜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문제의 원인은 오랫동안 내려오던 의학교육의 폐쇄적 구조에 있다고 보인다. 철저히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도제식 교육의 특성, 의대·인턴·전공의·세부전문의 팰로우쉽 등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쌓듯이 이루어지는 단계별 통과시험과 논문들, 좁은 의료계의 인맥까지 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스승과 선배는 절대적 권한과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이 부당한 폭력에 맞서 이겨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너무 오랫동안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뿌리 깊은 관행은 죄의식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전공의 시절 폭력에 고통받았던 자신도 나중에 똑같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는 어느 의사의 고백이 그걸 말해주듯 그 원인은 오랜 기간 구조화된 토양과 폐쇄적인 조직문화 그리고 무조건 복종의 군대식 수련 교육체계에 있다. 이런 체계에서 전공의는 자신의 진로 및 생사여탈권을 쥔 지도교수와 선배 의사의 폭력, 갑질 행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 직업의 특성과 생명을 다룬다는 수련과정의 엄중함을 이해한다고 해도, 결코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폭행을 근절해야 하는 것은 전공의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진료 일선에 있는 전공의들이 몸에 피멍이들 정도의 상습적 폭력에 시달려서야 환자들이 안심하고 진료받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지난 2015년에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전공의 특별법)을 국회를 통과하여 현재 실시중이다. 이 법은 교육과 수련이라는 명분으로 주당 수백시간(절대 과장이 아니다!)이 넘는 근무와 당직을 해오면서 이를 당연시 여기던 의료계의 대표적 적폐를 없애기 위해 오랜 기간 전공의와 대한의사협회에서 노력 끝에 만든 법으로 이는 전공의 자신뿐만 환자들의 안전한 진료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면, 이런 부끄러운 관행과 적폐들이 저절로 사라지고 개선될 것으로 믿었으나 현실은 법 따로 주먹 따로인 듯하다. 이제는 전 의료계가 나서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러한 적폐를 청산할 의지를 전공의가 아니라 기성세대 의사들이야 보여야 한다. 자체 정화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이 내 지위를 지키는 일, 자신들의 수입증감에만 연연하고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하면서, 전문가로 대접만 받으려 하는 집단은 적폐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의사들과 선배의사들이 모두 힘을 합쳐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끊어내고 스스로 자정과 개혁에 나서야 할 때이다. 이것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의료계가 그토록 주장하는 전문가로서 소신진료와 올바른 의료개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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