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예술가기본권 보장
독일, 예술가기본권 보장
  • 송민애 기자
  • 승인 2013.09.25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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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최고은을 막아라]<8>

 1980년, 유네스코는 제21차 정기총회에서 ‘문화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채택한 바 있다. 내용인즉슨, 예술가 역시 국가와 사회의 사회보장 및 보험규정의 적절한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국의 사회·문화적 전통에 맞춰 예술인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 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례로, 프랑스와 독일은 예술인들을 위한 별도의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예술인을 일반 시민과 동일한 제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또, 캐나다와 영국도 전체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예술인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등 각국의 사정에 맞춰 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의 ‘예술가사회보험(Kunstlersozialversicherung-KSV)’은 유럽 내에서도 긍정적인 예술인 복지사례로 꼽힌다. 다양한 예술가 복지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프랑스와 달리 독일의 예술가사회보험은 더욱 합리적이고 간단한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 예술인도 사회적 노동자다.

전 세계 수많은 예술인들이 그러했듯이, 독일의 예술인들도 여러 사회보장제도에서 오랫동안 소외됐었다. 독일의 보통 일반 직장인들이 100여 년 전부터 누려온 여러 사회보장제도를 예술인들은 불과 30여 년 전부터 누리게 됐으니 말이다.

실제로 예술가사회보험이라는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독일의 상당수 예술인들은 자영 예술인으로 활동하면서 적은 소득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더욱이 독일 사회보험은 기본적으로 고용관계에 놓여 있어야만 의무가입이 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자영 예술인들은 사회보험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조차 없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국가와 사회의 안전망에서 소외되온 독일의 예술인들은 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1975년 문화예술 관련 직업들의 불안정한 경제적·사회적 실태가 독일연방의회에 보고된 것을 계기로, 예술 종사자들의 경제적 및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개선이 요구된 것이다. 그 결과, 마침내 자영 예술인과 언론·출판인을 대상으로 한 ‘예술가사회보험’(KSV)이 도입됐다.

1976년부터 시작된 입법과정은 1981년 예술가사회보험을 규정하는 예술가사회보험법이 통과됨으로써 완료됐고, 이어 1983년부터는 독일 북부 빌헬름스하펜 시에 설치된 ‘예술가사회금고’(KSK)에서 ‘예술가사회보험’(KSV)과 관련된 업무들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가사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독일의 자영 예술인들 역시 일반 직장인들처럼 연금, 의료, 간호보험에서 제도적인 혜택을 받게 됐다. 이 같은 보험료의 분담 체계는 자영 예술인들이 일반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50%를 부담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국가가, 30%는 저작권 사용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독일의 다른 자영업자와 비교해 볼 때 예술인들의 사회보험제도는 상당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가 사회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험료 전액을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데 반해, 예술인들은 예술가사회보험의 적용으로 전체 금액 대신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게 사회보험료의 절반만을 내면 되기 때문이다. ‘예술인도 사회적 노동자’로 인정하는 독일과 독일국민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 세부적 기준안, 합리적 운영 돋보여

예술가사회보험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예술가에 대한 저작권 사용자의 특별한 사회적 책임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예술가사회보험에서 예술인들의 사회보험료 중 30%는 저작권 사용자들이 납부하게 돼 있다. 즉, 예술인의 성과물로 돈을 버는 저작권 사용자들이 업무계약을 맺은 자영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 비용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다.

일반 회사가 고용한 노동자에 대해 사회보험금을 지원해주는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저작권을 사용하는 기업의 영역으로는 출판, 언론, 사진 및 PR 대행사, 극장, 오케스트라, 합창단, 이벤트기획사, 방송사, AV와 음악제작사, 박물관, 갤러리, 서커스단, 예술인 훈련기관 등으로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예술가사회보험은 사회적 약자인 예술인에 대한 독일 사회의 남다른 배려와 이해라 할 수 있다.

또한, 독일의 예술가사회보험은 보다 넓고 섬세한 시각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아우르고 있다. 예술가사회보험 가입조건은 자영 예술가이어야 하며 예술작업을 통해 연간 3,900 유로의 최저 소득을 얻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본업 외에 여가를 이용하거나 취미로 예술활동을 하는 이들은 예술가사회금고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제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명 이상의 직원을 둔 사업주 위치에 있는 이들도 가입조건에서 제한된다.

다만, 신진 예술인들의 경우 3년 동안은 이 최저 한계를 넘지 못해도 가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혜택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막 예술의 세계에 뛰어든 신진 예술인들도 사회적 제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일 예술가사회보험은 수혜대상이 되는 예술직종을 400개로 세밀히 분류한 후 이 중 약 223종의 직업에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직종들은 크게는 네 분야로 구분되는데 조형시각예술분야, 음악분야, 언어분야, 공연예술분야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문화예술 직업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다채로운 직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독일의 예술인 사회복지제도가 대단히 세부적인 기준안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독일 베를린=송민애 기자

*본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의 웹진 '아르코' 중 144호에 실린 '예술인 복지 해외사례: 독일 편'을 토대로 작성됐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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