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이산가족 상봉
추석과 이산가족 상봉
  • 이경신
  • 승인 2013.09.10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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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위에 떴지/

달 달 무슨 달 낮과같이 밝은 달

어디 어디 비추나 우리동네 비추지/

추석이 다가 오면서 달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

요즘처럼 금세 어둠이 찾아오는 까만 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릴적 흥얼 거리던 동요가 생각나고 그 시절 추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저 달이 쟁반같이 둥글어지는 며칠 후엔 우리는 또 천리 길 마다않고 고향을 찾아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추석하면 떠 오르는게 정다운 친지와 이웃을 만나는 기쁨 또한 크지만 유달리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올 추석은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계획돼 있어 기억속의 그 사람도 꿈에 그리던 소원을 성취했는지 궁금해 진다.

망각의 필림을 되돌려 보면 그 사람은 진순이 아지매로 필자가 처녀적 면사무소에 근무할 당시 만났다.

지금은 80객의 할머니가 됐을 진순이 아지매는 우리 옆 동네에 사시는 초로의 아주머니였다.

진순이 아지매는 부량 시골마을에서 진봉으로 시집와 부량댁으로도 불렸는데 20대 젊은나이에 과부댁이 돼 농삿일 등 고단한 삶이 힘겨워 나이에 비해 더 늙어 보이던 아주머니였다.

진순이 아지매는 어느날 면사무소에 찾아와 뜬금없이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을 신청한다며 눈가를 촉촉이 젖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아마 그때가 80년대 중반이었으니 1985년 9월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의 동시 교환방문의 즈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순이 아지매는 결혼 5년만에 병약한 남편이 1남1녀의 걸음마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등져 혼자 힘겹게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이다.

다행이 서울에 살던 먼 친척이 딱한 사정을 알고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첫째 아들을 서울 인쇄소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며 데려갔는데 한 일이년 잘 지내는가 싶더니 6.25전쟁이 터졌다는 것이다.

전쟁이 터진 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 때문에 애간장이 녹았으나 끝내 들려 온 소식은 서울에서 붙잡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후 진순이 아지매는 KBS가 1983년 6월30일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해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자 뒤늦게 한걸음에 서울로 달려가 한달여 동안 종이쪽지를 들고 아들을 찾아 헤멨으나 끝내 소식을 알 수 없었다며 밑도 끝도없이 이산가족 신청을 하겠다고 억척을 부렸다.

눈소매를 적시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떼를 쓰는 아주머니에게 이산가족 찾기는 면사무소에서 하는 일이 아니고 적십자사에 신청을 해야되며 아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어야 된다고 차근히 설명해주자 끝내 목놓아 통곡해 버리는 아주머니를 달랬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경스럽다.

아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순이 아지매도 딸이 서울 근처로 시집을 가자 고향 떠난지가 십 수년이 돼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지만 추석이 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연일 뉴스로 이어져 그 뒷이야기가 새삼 궁금하기만 하다.

추석이라고 해도 많이 변해버린 세태가 아쉽지만 올해는 멀리 고향을 떠난 친지들이 돌아와 송편도 함께 빚고 둥근달을 벗삼아 더욱 돈독한 명절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남북관계도 더욱 개선돼 진순이 아지매 같은 이 땅의 이산가족들이 생사를 확인하고 남북을 서로 오가는 날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동산에 떠오르는 달님에게 간절히 빌어본다.

이경신(민주당 전북도당 부대변인·민주당 완산을 여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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