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손
고사리손
  • 진동규
  • 승인 2013.07.2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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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손, 고사리의 새순을 고사리손이라고 부른다. 어린 아기의 토실토실한 손처럼 돋아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면 그렇게 불렀을까. 검은 가지 끝에 꽃봉오리는 터뜨리는 모습이나 새잎을 여는 새 생명의 함성이 환희 그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지만 고사리손은 경이로움이라고나 표현해야 할까. 대지를 뚫고 솟구치는 힘이라니, 여리기만 한 주먹을 꼭 쥐고 제 주먹보다 큰 바윗덩이를 밀쳐내며 대지를 가르는 고고성이 어린 아기의 그것과 꼭 같지를 않은가.

 고사리는 고생대의 화석식물이다.

 지구라고 하는 별이 홍몽의 꿈을 털고 물과 흙으로 나뉘면서 흙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수정 같은 단단한 쑥돌 같은 것들이 생겨날 때 물가에는 삼각형의 관을 받들고 삼엽충 같은 것들이 태어나고 땅 위에는 포자식물인 고사리가 태어났을 터이다.

 꽃도 피워낼 줄 모르는 고사리풀, 땅속으로 줄기를 뻗어가는 땅속식물의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잎사귀를 땅 위로 피워내고 그렇게 해서 포자를 바람에 날려내는 포자식물의 살이를 시작했을 것이다. 손가락을 쫙 펴면 얼마나 많은 것을 거머쥘 수 있는가가 잘 보인다. 고사리손 제 잎을 넓게 펼쳐서 손금보다도 더 많은 포자방을 만들고 포자들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땅속으로만 줄기를 뻗어나가는 고사리는 빙하기가 몰아쳐도 땅속줄기들은 버티어낸다. 단단한 쑥돌이며 자수정 사이로 뻗어나간 줄기들이 생명력을 발휘하였을 터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상님께 바치는 제사상의 맨 윗자리에 고사리나물을 올렸다. 이른봄 맨 먼저 딴 고사리 데쳐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러낸다. 볶은 고기에 양념해서 무쳐내면 궐채다. 국을 끓여내면 궐탕이다. 조기매운탕을 끓이는 데는 고사리보다 나은 무엇이 더 있던가. 사찰 음식을 연구하는 요리 전문가에 의하면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훌륭한 제약회사 하나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모를 일이다.

염소는 풀의 전문가다.

 풀만 먹고사는 염소는 온종일 풀만 뜯는데 고사리는 외면해버린다. 풀이란 풀은 다 뜯어 먹고 배고프면 풀뿌리까지 나무의 껍질까지 갉아먹는데 고사리는 피해버린다. 풀에 관한 논문이라거나 노래 따위는 필요치 않다. 입에 닿는 순간 칼날보다 예리한 앞니가 뜯고 이어서 어금니가 갈아버린다. 삼키기만 하면 까만 환약으로 쏟아내기까지 제약회사의 공정쯤 어림도 없다.

 그런 풀 전문가가 왜 외면해버리는 걸까? 정말 싫은 냄새가 있는 걸까? 아니면 빙하기의 강추위도 물리치는 독한 기운이 배어 있다는 걸까? 에베레스트 산맥이 생기고 로키 산맥이 생기고 그리고 공룡이 태어나고 그럴 때 그 공룡도 감히 뜯어 먹지 못했던 금기의 풀이라도 된다는 걸까? 정녕 그렇다면 신비의 약일 수밖에 없지를 않은가. 신의 밥상에 올리는 반찬이면 최고의 반찬임이 틀림없다.

고사리도 뜯을 때 뜯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뜯어도 뜯어도 새순을 밀어올리는 고사리다. 땅속줄기는 맹렬하게 뻗어가면서 새잎을 피워내고 피워내고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를 지나버리면 안 된다.

 그렇다고 이십사절기 어느 대목을 지목하여 금지하는 것도 아니다. 봄기운이다 싶으면 부지런을 떤다. 비가 내렸다고 명주바람이 분다고 산을 오른다. 그러다가 그만두는 시기 또한 그런 식이다. “비암 나올 때 됐어.” 하는 식이다. 슬몃 그만두어버린다. 한 해 찬거리 다 챙겼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학이 되었다. 한 해의 반절이 지났다. 휴가철에는 고사리 말린 것도 챙겨볼 일이다.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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