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匠人), 지역문화 가치를 높이다 <중>경남 통영
장인(匠人), 지역문화 가치를 높이다 <중>경남 통영
  • 경남 통영=김미진 기자
  • 승인 2013.06.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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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전수조교 김금철, 섭패장 이금동 장인.

〈중〉이순신의 12공방..공예도시 통영의 원류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예술의 도시 통영에는 열거하기에도 벅찬 이름들이 살아 숨 쉰다. 

그 중에서도 전통공예의 뿌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자면 한정된 지면이 모자랄 정도. 400여 년 전,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했던 때부터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통영 12공방의 역사는 시작됐으니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만든 12공방은 군영에서 사용할 군수품은 물론 진상품과 공물까지 생산해 조달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런 공방활동이 자연스럽게 민간에 흡수되면서 그 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통영이라는 이름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전통 공예는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개와 칠로 멋을 낸 기물인 ‘나전칠기’를 생각하게 될 테지만 통영갓, 통영비연, 통영소반, 통영누비, 통영대발 등 통영의 이름을 건 전국 최고 수준의 공예품들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특히 수도와 그야말로 멀리 떨어진 남쪽 작은 도시에 수많은 명장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점 또한 놀라운 사실이다. 전통 공예가 사양길에 접어든 시대에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경남 최고장인들이 포진돼 고집스럽게 ‘12공방’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으로 지정돼 한국 나전칠기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송방웅 장인은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이수자들과 함께 왕성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송 장인의 작품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나전칠기 끊음질 기법을 적용해 나무와 와태, 가죽, 대나무 등 기물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배치, 금속의 강렬함과 자개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도 박재성, 김종량, 정찬복, 김금철 등 뛰어난 장인들이 통영나전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두석장은 주석, 방짜, 백동 등의 합금금속을 재료로 목공예품에 부착하는 장석을 재래식 기법으로 제작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두석은 가구의 이음새를 견고하게 해 여닫이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적인 목적이 우선이겠지만, 모양과 문양을 적절히 표현해 가구전체의 조형감을 살려 더욱 품격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한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5대째 두석을 만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김극천 장인과 김대홍 두석장의 손에서 태어난 장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전통 한옥에서의 필수품인 ‘발’을 만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 장인은 통영대발의 전통을 잇고 있는 유일한 인물. 부친 조재규 선생으로부터 소일 삼아 발 엮는 것을 보면서 몸에 익혔다. 일반 대나무 발보다 가늘고 섬세한 통영대발. 180cm 정도의 크기를 하나 엮는데 1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그 지루한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고 인내하는 장인의 정성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선비들이 탐낸 통영갓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정춘모(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장인, 나무가 지닌 문양과 색깔을 오묘하게 조화시키고 정교하게 짜 맞추는 소목장 김금철, 스물네 살의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받아 놓은 주문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통영소반을 만들기 시작한 소반장 추용호 장인까지 귀하고도 귀한 손길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장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통영이지만,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미술을 전공하고 취미로 이것저것 배워보려고 하는 청년들이 있을지 몰라도, 업으로 삼고 배우려는 진지한 자세를 보이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 나전칠기의 주재료인 조개껍데기를 정밀하게 가공해 자개를 만드는 섭패장 이금동 장인이 통영 유일의 전통자개 가공자인데, 그 험한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에 따라 통영시는 전통 공예를 재조명하고 이를 발전시키고자 2011년 5월 지역발전추진단에 전통공예육성팀을 조직하는 한편, 정부가 지원하는 향토핵심자원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는 등 나전칠기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생산기반 조성 및 인력 양성, 홍보 마케팅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과 통영전통공예관 두 곳에는 장인들이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고, 통영전통공예관에는 전시공간과 아트샵 등을 따로 마련하고, 일반인 대상 교육과 체험프로그램 등도 마련해 관람객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펼치는 ‘지역공예마을육성 시범프로젝트’를 통해 지역브랜드화와 상품개발, 해외교류 및 사업홍보 등의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등 안팎으로 전통공예의 틀을 탄탄하게 다지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 어느 지역보다도 전통공예문화를 충실하게 보존·육성하고 있는 바다의 땅. 통영이 나전칠기의 메카를 뛰어넘어 한국공예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경남 통영=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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