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 속에서의 ‘갑’과 ‘을’
역사전쟁 속에서의 ‘갑’과 ‘을’
  • 나 종 우
  • 승인 2013.05.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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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 과 ‘을’ 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膾炙)되어 지고 있다. 이러한 말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사회 한 켠 에서 힘의 우위가 관행처럼 정당화되어왔고, 그러한 관행이 도를 넘어서니까 ‘을’의 절규(絶叫)가 터져 나오면서 사회적 이슈(issue)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갑과 을의 관계는 우리 사회내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자조(自嘲)섞인 말이지만 한국은 국제관계(한·중·일)에서 '을'의 신세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에 역사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일본은 근대사에서 이웃나라에 자행한 만행을 합리화하고 제국주의를 미화하려는 망언을 쉬지 않고 되풀이 하고 있다. 함께 피해당사국이던 중국은 만주에 대한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 고대사에서 발해는 말할 것도 없고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이른바‘동북공정’이라는 거대사업을 국가적으로 벌리고 있다. 근자에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망언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잇단 망언은 스스로 과거사를 부정함으로써 주변국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자국 내에서의 정치적 위상 등을 바탕에 깔고 있을지 모르지만 시대착오적인 망언의 발상은 오만한 역사에서의 ‘갑’의 작태라 할 수 있다. 아베총리는 2차 대전 종전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일본의 총리의 발언을 계승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국가에게 많은 고통을 줬다. 이는 의심 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이를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을 하며 진심으로 사죄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무라야마의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뿐만 아니라 “침략이라는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망언과 함께 총선에서 '무라야마 담화 수정',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등을 공약한 데 이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성노예 희생을 부정하는 수정주의에 가세하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을 암시하는 96번 등 번호를 단 야구 시구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만주에서 생체실험을 했던 731부대를 연상케 하는 '731' 번호 훈련기를 타는 등 군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부인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표시 하였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근대역사에서 힘의 우위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위험한 역사인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한 역사 인식에 대하여, 박 대통령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 접견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시대 퇴행적 역사 인식이 한·미·일 공조 발목을 잡고, 아시아 국가 평화 협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미국 의회 조사국(CRS)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역사 인식과 발언이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 관계를 혼란에 빠뜨려 미국의 국익에 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 권리위원회(CESCR)도 "(성노예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부당한 짓을 하지 않도록 국민을 교육하라"고 일본에 권고했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유력 언론들도 아베의 '침략 망언'은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본을 기억 상실에 빠진 반인륜 국가로 전락케 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의 조너던 테이먼 편집장은 일본과 아시아국가들 사이에 얽힌 “70년 이상 묵은 역사 갈등의 실타래를 끊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분명하고 포괄적인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나치 만행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렇다. 진정성 있는 사죄가 있어야만 과거사가 청산되고 새로운 동반자, 협력자의 관계가 설정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또한 보다 진지하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대응 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29일 국회에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침략전쟁 부인 망언 규탄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나 이런 결의안은 국민적 관심사가 끓어오르면 제출했다가 관심이 식으면 그냥 넘어가는 관심 끌기용 결의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비단 일본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도 동북공정의 추이를 계속 주시하면서 역사에서 영원한 ‘을’ 로 살아가지 않으려거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역사전쟁은 총칼 없이 필설로 하는 논리 싸움이며 결국 역사를 보는 눈의 문제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나라들의 계속되는 역사전쟁에 대하여 역사관을 바로세우는 일이야 말로 우리의 생존문제라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공감대를 형성해 중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관을 논파하는 일이 역사전쟁에서 ‘을’의 위치를 벗어나는 일이다.

나 종 우<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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