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장미
파란장미
  • 송영주
  • 승인 2013.04.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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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는 파란색 장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꽃 색깔 중 파란색은 델피니딘 이라는 색소성분에 의해 발현되는데 불행히도 장미에는 델피니딘을 생성하는 특정효소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델피니딘이 극소량이라도 장미 생체 내에 존재했다면 육종가 들은 그것이 비록 붉고 주황색을 띤 개체라 해도 반복적인 교배 방법을 통해 델피니딘이 존재하는 우수한 계통을 선발해 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장미의 꽃말 중 파란장미는 ‘불가능’이라는 의미로 표현되어 왔고 파란장미의 개발은 오랜 숙제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2004년 일본의 산토리사의 자회사인 호주의 플로리진사에서 파란장미를 개발해냈다. 유전자이식이라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정상장미에서 빨간색이나 주황색 색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기술적으로 차단하고 팬지에서 뽑아낸 파란색 델피니딘 색소 유전자를 주입시켜 성공한 것이다.

파란 장미가 기존의 소비시장에서 붉은 장미를 대체 할 만큼 기호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품종이 가지는 의미와 희소성으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 일반 장미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은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화훼는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의 출범으로 세계의 주요 생산 국가들이 모두 자국의 신품종을 보호하는 체제로 들어서게 되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국내 육성 화훼류 품종 수가 국내 유통 품종의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동안 장미를 위시한 주요화훼작물의 품종육성은 전통적인 교배육종 방법을 통해 꽃 색깔과 모양을 다양화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등 주요 형질을 개량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제한된 유전자원과 교배의 어려움, 교배 후 낮은 선발효율 등으로 인해 품종육종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미의 경우 약 1만여개 꽃들을 대상으로 조합을 작성 교배를 하는 경우 6~7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하는 품종의 수는 운이 좋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겨우 1~2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파란장미에서 보는 것처럼 목표로 하는 형질들의 유전정보를 해독하고 특정유전자를 가진 자원들을 친화성이 높은 품종에 형질전환시켜 원하는 품종을 개발하는 생명공학기술을 접목하여 고부가 화훼품종을 탄생시키는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화훼류는 잎, 줄기, 뿌리와 같은 영양생장기관 자체로서 증식이 용이하고 개화 소요기간이 짧아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조기품종 육성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또한, 대부분 관상용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기존의 곡실 작물과는 달리 생명공학산물에 대한 환경 및 소비자 단체의 거부감과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어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한 신품종 육성의 최적 작물로 손꼽히고 있다.

물론 생명공학기술이 만능은 아니며,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반환점을 향해가는 수준이다. 유전정보의 해독, 특정유전자의 분리와 다른 개체로의 전이 등에 관여하는 단계별 개발기술이 무수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국화, 카네이션, 거베라, 장미, 페튜니아, 난, 나리 등을 대상으로 화형과 화색, 향기 그리고 생장발달을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신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전통육종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품종 개발 실적이 미미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전통적 육종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명공학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화훼품종의 국산화 기반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중심 화두가 된 창조경제의 핵심이 현재 진행되는 각종 과학기술의 융·복합,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한 아이디어 발굴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것에 있다고 볼 때 농업생명공학도 그에 해당하는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전통적 육종방법과 생명공학 기술을 융합하여 국내 정서에 맞으면서도 해외시장에서도 선호하는 기호품종 그리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능을 가진 꽃들을 창조해 낸다면 연 80억에 가까운 해외 로열티 문제를 해소함과 더불어 농가 소득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송영주<전라북도농업기술원 원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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