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사고 건립 9주갑
전주사고 건립 9주갑
  • 이동희
  • 승인 2013.04.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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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후 고려제도를 따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국가 중요 서적을 보관하는 사고로 한양 춘추관에 내사고, 충주에 외사고를 설치하였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한질만 있었고 충주사고에 봉안되었다.

이후 세종 21년(1439)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설치하여 조선전기 4대 사고 체제를 확립하였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두 곳에 더 사고를 설치하였던 것이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이고, 성주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해인사가 있는 곳이어서 사고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의 춘추관, 성주, 전주에 조선왕조실록이 실제로 봉안되기 시작한 것은 세종 27년(1445)의 일이다. 충주사고에 있던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을 3부 더 필사하여 봉안하였던 것이다.

당시 춘추관, 충주, 성주에는 사고건물이 건립되어 있었지만 전주는 그렇지 못했다. 전주는 실록각이 건립되어 있지 않아서, 세종 27년 겨울 전주성내의 승의사(僧義寺)에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세조10년(1464) 가을에는 진남루(鎭南樓)로 실록을 옮겼다.

승의사는 한지산업진흥센터 부근이며, 진남루는 객사 후원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봉안하였던 승의사 자리에 지금 한지지원센터가 자리한 셈이다. 묘한 역사성으로 요즘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소재이기도 하다.

전주사고 실록각 건물이 경기전 진전 담 너머에 건립된 것은 성종 4년(1473)이다. 인근 여러 포(浦)의 선군(船軍) 300명을 역군으로 동원하여 실록각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이 실록각에 성종 4년 8월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하기 시작하였다.

2013년은 전주사고가 건립된지 540주년으로, 60갑자가 아홉 번째 돌아오는 9주갑이 되는 해이다. 이러한 때에 전주사고의 역사를 되새기고, 이를 기념하는 것은 지역의 정신사적 맥락에서도 뜻 깊은 일이며, 실록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후손들의 도리이기도 하다.

올해는 또한 태조실록이 편찬된지 600주년이 된다. 태조실록은 태종 13년(1413)에 처음 편찬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개수를 거쳐 오늘에 전하고 있다. 경기전에 태조어진이 모셔져 있는 만큼 태조실록은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다.

전주에 사고가 설치되었다는 것 만해도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전주사고가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임진왜란 중 전주사고본 실록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었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때 관찬사서를 비롯해 개인 소장의 많은 문헌과 문서들이 유실되어 조선전기의 역사를 논할 때 조선후기보다 실록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전주사고는 또한 조선전기 외사고들 중 유일하게 사고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조선후기 4곳의 외사고는 현재 그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으나, 조선전기의 충주와 성주 사고는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에 반해 전주는 그 위치가 분명하며, 현재 실록각이 그 자리에 무주 적상산사고를 본떠 복원되어 있다.

경기전 뒤편에 자리한 어진박물관에서는 전주사고 9주갑을 기념해 조선왕조실록 특별전을 올 10월에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전주시에서는 올해 후반기 조선왕조실록 포쇄를 재현한다고 한다. 이는 전주사고의 역사를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포쇄 재현은 또 하나의 특별한 전주의 문화상품이 될 것이다.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은 전주사고 앞 적절한 곳에 실록보존의 주역인 경기전참봉 오희길, 정읍 태인의 선비 손홍록과 안의를 기리는 비를 작은 규모라도 건립하였으면 한다. 이는 전란의 와중에서 실록과 태조어진을 지켜낸 이들의 정신을 기리는 일이 될 것이다. 정읍에서는 지난해 손홍록과 안의의 묘역을 정비하고, 이들이 실록을 수호하며 기록한 일지 임계기사를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조선후기 사고에 전시관을 건립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형태가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건물에 전시실을 설치한 것은 우리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몇 년 전에 무주 적상산사고에 전시실을 마련하였고, 지난해에는 전주사고에 작은 전시실을 꾸며 관람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였다.

이번에 진행되는 국비사업에 전주사고도 포함되어 그 역사와 정신을 이어가고 한옥마을의 문화콘텐츠를 확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 보존은 사라질뻔한 200년의 역사를 지킨 것이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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