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과 멘붕
불황과 멘붕
  • 김진
  • 승인 2013.03.29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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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신경 쇠약을 뜻하는 말이 mental breakdown이다. 여기에서 유래 되었는지 확실하진 않으나, 직역을 하자면 멘탈이 붕괴하였다는 의미를 ‘멘붕’이라고들 한다. 설마 하는 맘으로 어학사전을 찾으니 신조어로 등록이 되어 있다. 상식과 논리로 소통하던 시대에서 기발한 상상력이나 튀는 감성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멘붕’ 같은 신조어들이 유행하는 것 같다. 한데 ‘멘탈’이란 유행어가 참 익숙하다 싶어 되짚어 보니, IMF 때 국민들이 제일 많이 들었던 용어가 ‘펀드멘탈’이었던 거 같다. 양쪽에 쓰인 우리말의 의미는 다르지만 철자는 같다. 또 재미스럽게 상황을 이어보자면 가정경제의 펀드멘탈이 무너지니, 구성원들의 멘탈이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 아니겠는가!

불황의 경제학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가 불안해질 때면 ‘펀 마케팅’이 관심을 끈다. 경기가 어려워서 구매력이 떨어진 소비자들은 같은 값의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특별한 서비스나 즐거움 같은, 또 다른 만족감을 보태 줄 수 있는 보상심리를 원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위트 있는 요소로 달래주며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이 바로 펀(FUN) 마케팅이다. 그 대표적인 게 최근 유튜브 100만 건을 돌파한 가수 싸이의 ‘싸이슬 쇼’이다. 싸이가 이름만으로도 재밌는 007샷, 도미노샷, 젓가락샷, 팔꿈치샷, 성화봉송샷, 충성샷 등, 술자리를 더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한다. 재기 발랄한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은 댓글과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백화점에서는 강남 스타일 흥행에 맞춘 말춤 경연 대회를 여는가 하면, 많은 CF들이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버리고 있다. 이처럼 최근 마케팅계의 트렌드만 봐도 체감경기가 얼마나 악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깊은 불황 속에 눈길을 끄는 것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여가활동이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모든 산업이 부진했던 작년에도 유명 등산화나 워킹화 판매는 제조업체와 백화점 모두 15~20%가량이나 대폭 증가했다.

소유에 대한 트렌드의 변화

어쨌든 체감경기가 악화하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근로자들의 임금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인상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폭등하는 농축수산물이나 생활필수품, 그리고 공공요금까지 서민들의 목줄을 꽉꽉 죄여오고 있다. 이처럼 생필품들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서민층들의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스크루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쥐어짜기를 뜻하는 스크루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긴 빨래를 양쪽에서 반대로 돌려가며 쥐어짜는 모습을 상상하면 맞을 게다. 그리 틀어 짜다 보니 최근 들어 젊은 사람들의 소유에 대한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세대는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비를 줄였다. 그리곤 전셋집을 거쳐 집 한 칸 마련코자 하는 소유에 집착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입장은 다르다. 미래가치보다는 지금 향유할 수 있는 현재가치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집은 없어도 차는 먼저 장만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참 안쓰러운 현상이다. 아무리 세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왜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이 없겠는가!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 속에서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빨리 치솟는데, 무슨 수로 몇 억씩 하는 집을 장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 집 마련과 같은 사치스러운 생각은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난 것 같다. 다소나마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러한 현실적 상황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라는 안도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차피 미래가치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다면, 현재의 즐거움에 충실 하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허나 여기서 미래에 대한 어떤 가치와 현재 향유하는 가치를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젊은 세대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주지 못하고, 멘붕이나 외치며 헤매게 만든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을 무겁게 느낄 뿐이다.

김진<경희대 객원교수/전북생활체육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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