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52>물건도 션찮다면서
가루지기 <552>물건도 션찮다면서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3.1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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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28>

“물은 됐고,. 탁배기나 한 상 내오게. 자반고등어라도 한 손 굽고.“

정사령 놈의 말에 주모가 작정한듯 나섰다.

“외상이요? 공짜요?”

“자네허고 나허고 새삼시레 그런 걸 묻는가?”

정사령 놈의 목소리가 뜨악했다. 지금껏 기분 좋게 술대접을 받아본 일은 없지만, 주모가 술값부터 따지고 든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상도 안 되고, 공짜 술도 주기 싫어서 글만요. 헌깨 정 술얼 자실라면 선금얼 주씨요.”

“선금? 아, 주제. 얼매면 되겄는가?”

“서푼만 주씨요.”

“서푼? 먼 술값이 그리 비싼가?”

“비싸기넌요. 탁배기 한 되박에 자반고등어 한 손이면 닷푼언 받아야허는 것얼 겨우 본전만 받는구만요. 흐기사 한번도 술값얼 내고넌 술얼 안 자셔봤을 것인디, 술값이 싼지 비싼지나 알겄소.”

주모의 뼈있는 소리에 정사령 놈이 잠잠해 졌다.

“저 자구가 술값얼 주겄다는 것얼 본깨, 색시한테 한 눈에 반했구만. 저 자구가 계집 욕심언 또 많다네.”

“물건도 션찮다면서요?”

“원래가 물건 부실헌 사내가 계집탐언 더 헌당깨. 꽃값이나 제대로 주면 누가 머란가? 꽃값도 안 줌서 껄떡거리기만 헌깨 존 소리가 안 나가제.”

주모가 구시렁거리면서도 자반고등어를 굽는다, 탁배기를 병에 담는다, 하고 서둘렀다. 

그러다가 옹녀 년을 돌아보며 물었다.

“헌디, 자네, 산내골에 산다는 말이 참인가? 아까막시 첨에넌 자네가 나헌테 함양 주막에 있었다고 안 했능가? 헌디, 이생원이 몰라보는 것얼 본깨, 그 말도 그짓말이었고, 어디서 왔능가? 산내골에 산다는 말이 참인가? 거그넌 변변헌 주막도 없는디, 주막이라고 해봐야 마천 삼거리 주막이 있는디, 거그 있었능가?”

“아, 어디 있었으면 머허실라요? 그냥저냥 쪼깨 있다가 훌쩍 가뿔면 그만일 것인디요.”

“훌쩍 가뿔면 그만이라고? 여그 온지 한나절도 채 안 되었는디, 펄새 역마살이 도졌능가?”

주모가 화들짝 놀란 낯빛으로 돌아보았다. 사내놈들의 전대를 비울 쓸만한 계집인가 싶었는데, 만 하루도 못 되어 떠날 궁리인가, 싶어 안달이 난 것이었다.

“모르제요. 이 년의 역마살이 근당깨요. 궁합이 안 맞으면 한 나절도 못 되어 궁뎅이가 들썩거린당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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