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서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 진동규
  • 승인 2013.02.1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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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지 않은 해오라기 백로와 함께 겨울을 살았다. 오월에 왔던 놈들인데 지난 시월 이민청에 가 출국 서류를 날려버린 놈들이다. 폐렴 예방주사 한 대롱이면 독감쯤 간단하다고 싸이 춤을 선보인 놈들이다. 날개를 예각으로 꺾는 회전무도 보여 주었다. 전에는 내가 물장난하며 모래무지를 몰고 다녔던 시물강이 이제는 저놈들 것이 되었다.

주말에는 명사십리 바람공원을 자주 찾았다. 앞바다에 떠오르는 모래 언덕의 매력에 이끌려서다. 조선의 어려운 시기에 우리 장군께서 바다 위에 펼쳤다는 학익진처럼 쇠피리를 불어댔다. 새날의 출발일 새로운 사구의 융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리라. 몇 날, 몇십 날, 몇백 날을 바다는 제 깊은 속에서 이 역사를 이어왔던 것이 아닌가.

저 황금빛 모래 턱에 밤이 오면 조개들의 춤이 이어질 것이다. 날개 달린 미리내의 조개들이 별자리를 따라 작은 나래를 파닥이며 내릴 터이다.

서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황홀하다. 신천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라고 무슨 잠꼬대를 하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검당포가 있었다. 날 천명이었다는 포구다. 하루면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왕래했다는 포구다. 그렇게 배가 많이 왕래했었다. 조선 말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고향이다.

채선의 어머니는 세습 무당이었다. 번창한 검당포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녀가 살던 집은 흔적도 없고 집터 자리에는 그 옛날의 당집 귀목나무가 간신히 껍질만 남아 있다. 포구는 아예 흔적도 없다. 썰물 때 드러나는 뻘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꼬막을 실어 나르는 것은 경운기가 아니라 트럭이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가물가물 눈에 보인다. 채선이 신재효 선생 애제자니까 한 백 년 남짓 세월이다. 내 아버지의 외할머니 때 일이었다. 내 아버지의 손가락에 봉숭아 꽃 찧어 묶어 주시던 그때가 아니던가. 손차양하고 건너다보는 바다 건너가 변산이다. 뻘밭으로 곧 이어져버릴 듯하다. 하긴 내 손차양 하고 건너는 바다에 부창대교를 준비하고 있다니까 손가락 꼽아볼 일도 아닌가 보다.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를 찾아가기 위해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내리쳤다. 지팡이가 길을 내어 주었다. 진묵대사는 내 돌이 살아나면 국운이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복지도 국운도 이제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보여야 할 당면 문제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손바닥 펴보이듯 해야 한다. 새 정부 복지예산, 문화예술 예산, 얼마나 실현해낼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싸이의 말춤은 잠시 일어난 한류가 아니라 세계적인 가수의 탄생임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대륙을 질펀하게 덧씌울 색깔은 아무래도 초록이면 좋겠다. 황사까지도 덮어씌울 그림이랑 그려야겠다.

일본 열도는 짜릿한 감동으로 흔들어버릴 영화 한 편 찍어 내야겠고, 참 그렇지 막걸리는 좀 그윽하게 올라오는 그래서 전라도 육자배기 가락이 슬슬 풀어지게 익혀내면 더 좋겠다. 그리고 어디 더 챙길 것이 없을까. 말총으로 만든 할아버지 갓은 끈으로 묶는 것 말고 머리에 딱 맞게 디자인을 다시 해내면 어떨까. 몽골 사람들 추워서 말총모자는 힘들 텐데 그걸 좀 형제끼리 합작으로 하면 보기도 좋겠다. 잇속만 챙긴다는 소리 듣지 않게 해야 한다. 여기서 웃으면 안 되는데 양반 체면이 이래서야 덕담 나누는 자리가 아니지, 다짐의 자리다. 다짐의 자리.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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