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의 뒷담화 대처법
로크의 뒷담화 대처법
  • 장상록
  • 승인 2013.02.0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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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고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때의 일이다.

길 가운데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차에 치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하반신이 짓이겨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울부짖던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로드킬에 희생되는 동물이 어디 그 어린 고양이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잔상을 쉽사리 지우지 못하는 것은 고통의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워의 그 혼잡한 도로에서 고양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나선 사람은 있었을까.

한국에서 다시 만난 친구에게 그 때의 일을 얘기하니 이렇게 답한다.

“고양이들은 오래 전에 천국에 갔으니 이제 잊어.”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는 너무도 끔찍해 상상하기 힘든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새끼 고양이가 차에 치인 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그 어떤 사건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이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쓰러졌다. 이때 숲에서는 어떤 소리가 났을까.

존 로크(John Locke)는 이에 대해 “나무는 아무 소리 없이 쓰러졌다.”고 얘기한다.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소리가 인간의 고막을 울려 인식되지 않는 한 그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은 고양이는 그저 죽음을 맞았을 뿐이다.

내가 현장에 없었다면 새끼 고양이는 로드킬에 희생된 수많은 개체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고통의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시·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기는 물리적 소리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흔히 ‘뒷담화’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

적잖은 사람이 그것에 억울해 하는 것은 사실관계의 부정확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큰 것은 믿음에 대한 배신감에 있다. 내가 없는 곳에서 발생한 나에 관한 물리적 소음이 내게 인식 되는 순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기서 다시 한 번 로크의 생각을 들어보자. 로크는 뒷담화에 대해 이런 조언을 하고 있다.

첫째, 수집은 하되 그대로 믿지는 마라. 언어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줬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때로는 뉘앙스 차이나 전달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의도를 살펴라.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유언을 통해 아들 삼형제의 단합을 간곡히 당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게 된 데는 형제에 대한 주변의 말을 가려듣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얘기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의도는 사실관계를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못들은 척’ 하는 것이 최상이다.

사람의 말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 진실을 말하게 되어있다.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신 분이 있다. “A가 너를 굉장히 안 좋게 얘기하고 다닌다.”

짧은 순간 당혹스러워 뭐라 얘기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아는 한 그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지만,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 뒤에도 A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어느 순간 내려진 판단은 바뀔 수 있다.

내 어떤 모습에서 부정적인 것을 봤던 사람이 관계의 지속을 통해 내 가장 큰 우군이 될 수 도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뒤에 A는 실제로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내가 살아오면서 잘 대처한 행동 중 하나로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뒷담화를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다.

“초대받지 않은 충고는 적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는 말처럼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한다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하물며, 뒷담화는 어떻겠는가.

뒷담화는 아무도 없는 숲에 쓰러진 메카세콰이어의 진동에 불과하다.

소통은 진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뒷담화는 여전히 안줏감으로 매력적이다.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면 로크가 제시한 대처법을 곰곰이 음미해보자.

고통 받던 새끼 고양이가 천국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상록<충남 예산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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