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51>치마끈을 풀까말까
가루지기 <451>치마끈을 풀까말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01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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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22>

옹녀 년의 넉두리에 강쇠 놈이 빙긋 웃었다.

“풀고 싶소. 아매도 임자를 만낸 사내덜이 다 병신 알자리겉은 놈들인갑소. 계집허고 합궁 한번 했다고 뒈질 목심이라면 애당초 세상에 나지럴 말았어야지요.”

“이녁이 내 말얼 안 믿는갑소이. 어디서 오는 길이요? 혹시 운봉얼 안 거쳤소? 운봉 이부자가 씨받이 하나 잘못 들였다가 씨도 못 받고 복상사했다는 소문은 못 들어보았소?”

“들었소. 어떤 계집이 씨도 안 받아주고 대들보겉은 가장만 장사지내고 논꺼정 몇 마지기 얻어가지고 갔다는 소문으로 술꾼들이 안주가 없어도 술을 잘 묵습디다.”

“이년이 바로 그 년이요. 그래도 나허고 살방애럴 찧고 싶소?”

“찧고 싶소. 속궁합 맞추다가 죽은 사내들이 어찌 임자탓이겄소?

다 타고 난 팔자소관이 아니겄소? 급상한에 죽은 놈은 급상한에 죽을 팔자를 타고 났고, 당창병에 죽은 놈은 당창병에 죽을 팔자를 타고 났고, 벼락맞아 죽을 놈은 벼락맞아 죽을 팔자를 타고 난 것이 아니겄소? 그것이 어찌 임자 탓이겄소? 임자 잘못이겄소. 모두가 다 타고 난 팔자소관이제요.”

“이녁은 참 씨언씨언해서 좋소. 살방애도 그리 잘찧소?“

“잘 찐가 못 찐가넌 찧어보면 알 것이 아니요? 살방애라고 어디 다 같은 살방앨랍디여. 확이 제각끔 다른디, 똑같을 리가 있소.”

“정말 자신있소? 안 죽을 자신 있소?”

옹녀 년이 치마끈을 풀까말까 망설이는 눈빛으로 강쇠 놈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폈다.

“자신있소. 글고, 살방애 찧다가 죽을 팔자를 타고 났으면 죽겄제요. 이몸은 하나도 겁 안 나요. 긍깨, 한번 찝시다.”

강쇠 놈이 침을 꿀꺽 삼키는데, 두 눈으로 불길을 활활 피워내던 계집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일어나시오? 살방애럴 찔라면 누워서 찧어야허는디, 일어나다니요?”

“이녁도 일어나시오. 우리가 비록 오다가다 길바닥에서 만내가지고 백년해로허자고 살맞추고 입맞출망정 예가 없어서야 되겄소? 우리끼리 허는 혼산디, 초례상 차릴 것이 멋이겄소? 둘이 서로 마주보고 맞절이나 허는 걸로 예럴 대신헙시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요.”

강쇠 놈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옹녀 년이 두 손을 이마에 대고 얌전하게 앉아 머리끝이 바위에 닿도록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벙긋벙긋 웃으며 옹녀 년의 절을 받은 강쇠 놈이 두 손을 가슴까지 올렸다가 내려 바위를 짚고 엎드려 이마가 바위에 닿도록 맞절을 했다. 잠시 잠깐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둘이 같이 고개를 들고 이마가 닿을듯 말듯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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