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게 하는 좋은 관계
참여하게 하는 좋은 관계
  • 문창룡
  • 승인 2012.12.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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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크고 작은 집안 행사가 많이 생긴다. 이때 어느 집에서나 경험하는 일이 있다. 자녀들이 함께 집안 행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 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미리서 예고 할 경우 참여도가 높다. 동의까지 받아두면 더 좋다. 그런데 부모들이 기억해 둘 것은 예고를 하든지 안하든지, 동의를 받았던지 받지 않았던지 아이들은 아쉬울 것이 없더라는 것이다. 힘들게 이야기했는데 아이가 쉽게 거절해버리면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다. 설사 여차여차하게 아이를 설득하여 부모의 의지대로 집안 행사에 참여시켰다 하더라도 아이가 꾸물대거나 시무룩해 있고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덩달아 부모까지 기분이 나빠진다.

왜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될까? 아이들이 집안 행사의 주체가 자신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결정을 부모가 주도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하도록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부모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부모는 이 게임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기대하며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매우 소극적적으로 반응한다. 설사 여차여차 해서 부모의 의지가 관철되었다고 하더라도 시무룩하거나 꾸물대며 나름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은 18대 대통령선거일이다. 후보자마다 적극적으로 투표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유행어들을 패러디한 현수막들이 거리를 도배하고 있다. 인터넷 포탈마다 별별스러운 광고들을 쏟아내며 투표참여를 호소한다.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필자에게도 투표권을 가진 대학생 아들과 딸이 있다. 모두 외지에 있는 터라 본인들이 맘에 내키지 않으면 투표를 할리 만무했다. 시간과 경비가 나는 문제라서 더욱 그러했다. 필자는 금방이라도 ‘투표하러 내려오너라.’란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줬다. 그런데 투표 날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집에 오겠다는 말이 없었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투표를 해야 하건만 반응이 없었다. 초조해졌다.

투표 이틀 전, ‘투표는 어떻게 할 거야?’ 필자는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그렇잖아도 투표하러 가려고요.’ ‘시험이 투표전날 끝나서 시험 끝나고 밤에 갈게요.’ ‘우와, 고마운 내 아이들!’ 투표하러 먼 길을 온다고 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가족이 서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참여하는 일은 감정이 깊이 개입된다. 가족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말하고 조건 없이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족이 아닌 사람보다도 더욱 서로의 기분과 상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자녀가 부모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한다면 우선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아이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비결이다. 아이들의 생각과 아이들이 쓰는 말, 조금은 버릇없는 행동까지도 읽어주려는 노력만 있으면 된다. 이러한 부모의 소소한 변화에 호의적으로 변하지 않을 자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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