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30>콩닥콩닥 뛰면서 오두방정
가루지기 <430>콩닥콩닥 뛰면서 오두방정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7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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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1>

'허, 이 년의 팔자 욕되고도 욕되도다. 내 어찌 전생에 지은 죄가 없으까만, 나이 일곱에 철이 들고부터 허다못해 개미 한 마리 내 눈으로 보고는 쥑인 일이 없거늘, 어찌허여 만나는 사내마다 앞다투어 고태골로 가는고?'

꼴에 제가 쳐 먹을 푸성귀는 제 손으로 가꾸어 먹겠다고 마당 앞 텃밭에 괭이질을 하던 옹녀 년이 한숨을 푹 내쉬며 괭이자루를 내던지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넉두리를 늘어 놓았다.

"꿩꿩꿩. 뻐꾹뻐꾹."

때는 바야흐로 앞산 암뻐꾸기는 뒷산 숫뻐꾸기를 찾아가고, 뒷산 까투리는 앞산 장끼놈을 찾아가느라 꿩꿩 뻑뻑 울어대는 봄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밤내내 흘레를 하느라 삼년 묵은 청상이 시어머니 눈치에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끙끙거리듯이 밤내내 앓는 소리를 내던 산봉우리들이, 대명천지 밝은 날에 가랑이 쩍 벌리고 감창소리도 요란하게 골짝물을 천방져 지방져 흘러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졸 때다, 졸 때구만. 까투리야. 너넌 좋겄다. 힘 좋은 장끼놈이 두 다리로 네 등짝 꽉 움켜잡고, 두 날개 활짝 편 채 야들야들헌 가운데 다리를 네 아랫녁 살집에 푹 꽂아 줄것이니, 하늘을 날겄구나, 구름을 타겄구나.'

산은 산끼리, 물은 물끼리, 날 것은 날 것끼리, 기는 것은 기는 것끼리, 밤이나 낮이나 흘레를 하느라 숨넘어가는 소리 요란한 봄의 자태에 옹녀 년은 나오느니, 한숨이요, 흐르느니 눈물이었다.

어찌어찌 아들 하나 낳아주고 그 그늘에서 날마다 새록새록 커가는 어린 것 재롱도 보면서, 먹새 걱정, 입새 걱정 없이 이부자의 그늘에서 남은 한 평생 살다가 나중에 늙어 허리가 굽으면, 씨받이로 낳은 자식일망정 자식은 자식이고 어미는 어미니까, 그 인연 나몰라라할까, 어미를 모른다고 지리산 깊디깊은 골짜기에 설마 고려장이야 시킬까. 아들 그늘, 그것 한 가지 바라고 이부자의 씨를 받던 날, 씨 한 알 채 떨구지도 못하고 가슴골짜기에 얼굴을 쳐박고 죽은 이부자 천수 놈이 생각할 수록 원망스러웠다.

'하이고, 징허고도 징헌 것들.'

옹녀 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씨받이 계집 하나 잘못 들여 하늘같은 지아비가 돌아가셨다고 입에 거품 물고 머리채 휘어잡는 안방 마님이야 그렇다고 치드래도, 문중의 일가부치들이 모두 모여들어 장사 치룰 생각은 않고, 천하의 잡년부터 때려 죽여야한다면서 몸둥이 들고 설치던 꼴이 떠오르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세상의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짠 맛을 골고루 맛 본 옹녀 년도 살기 띤 눈빛에 푸들푸들 떠는 몸둥이 끝을 보자 오금이 저리면서 숨이 컥 막혀 할 말을 잃고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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