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황금성
아름다운 황금성
  • 진동규
  • 승인 2012.12.17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아노 뚜껑을 뜯어버리고 알건반을 타는 솜씨는 얼마나 시원스러운가. 연주자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토벤 협주곡 4번을 진행하고 있었다. 표정 연기로 눈짓으로 지휘를 해내려니 피아노 뚜껑을 뜯어 내버려야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왼손으로 건반을 짚어 가면서 오른손으로 휘젓는 허공은 얼마나 광활하던가.

대선 전야를 어떻게 치러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음악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장 교수 홀 축제를 생각해낸 것이었다.

우리 대선 주자들 참으로 고마웠다. 그분도 환심을 사려는 노력만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저것은 좀 심했다 하면서도 우리 국민 누가 그렇게 크게 하면서 역정을 내시지는 않았다. 저 대목은 뻥이지? 그래 알았어. 그쯤이면 되었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만하면 충분하고 말고, 알만한 건다 아는 수가 있지. 감언이설이라니, 포장하고 또 포장하고 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진정성이거든. 뻥, 뻥, 뻥하다 보면 그것은 진정성이 없구먼! 결론은 쉬 나오거든.

이미 결과는 나와 있다.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데, 이긴 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장기판 뒤엎듯이 하고 기회만 노리다가 줄서기에 뛰어드는 선수들은 또 얼마나 가관이던가. 팔 할이 피해를 입어도 일 할의 이익이 내게 온다면 기꺼이 그 일 할의 손을 잡겠다는 현실적인 사람들이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 같지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아라. 역사는 얼마나 엄숙한 제 스스로 역사를 가지던가.

한 달 전 이 지면에서 십이월 십구 일은 내 가족들과 함께 명사십리 바람광장에서 축배를 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역사가 어떻게 결과되는 것인가를 그림책 펴보이듯 하는 바람광장이다.

명사십리는 고창 심원면의 동백정포에서 상하면의 구시포까지 해변 모래 언덕을 말한다. 이렇게 긴 모래 언덕을 사이에 두고 뱃길을 잇는 포구를 연 것이 고려조, 바다는 밤낮으로 밀물 썰물을 지어서 바닷것들을 어루어내면서 그 흔적으로 뻘밭도 모래 언덕도 지상에 남겨 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때맞추어 일어나는 해일과 흰 거품은 격조 있는 역사의 추임새가 아닌가.

명사십리 먼바다로 보이는 남보랏빛 산이 부안군 사산이다. 바다가 사산 앞에 뻘밭을 짓고 있는데 물속을 모르는 왜의 선단이 백석강구 진펄에 들어 전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백제의 풍왕이 이끄는 백제의 마지막 부흥운동 그 슬픈 이야기의 현장이다.

명사십리가 동백정포(동호)에서 구시포까지 십 리가 훨씬 넘는다. 이런 명품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것은 아직 세상의 몫이 아닌 때문이리라. 이곳은 아직 바다의 몫이다. 직선이다 싶게 곧게 뻗쳐 있는 모래 언덕이 잡목 숲에 덮여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사구의 양쪽이 뻘밭이 아니던가. 처녀 사구였던 셈이다. 아뿔싸!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사구 중심으로 관광도로를 뚫어버렸다.

오늘은 바다가 들려주는 바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날이다. 뻘밭인 앞바다에 황금성 하나 짓고 있지를 않은가. 저 황금성을 준비하느라 바다는 속 깊은 곳에서 얼마나 속을 끓이고 끓이고 그랬겠는가. 앞 섬나라에서는 몇 번인가 쓰나미가 일었다고도 하고 옛날의 마야인들은 일찌감치 달력을 접었다고도 하지 않는가.

바닷속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동안 바다는 황금빛 모래알들을 빚어서 오늘 우리 앞에 아름다운 황금성을 선물하지 않는가.

바다에 베토벤 교향곡을 바쳐야겠다. 바렌보임에게 배표 한 장 보내야겠다.

진동규<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