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09>싫소 징그럽소
가루지기 <409>싫소 징그럽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02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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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59>

"그놈얼 정성스레 잘 씻어주시요. 아짐씨럴 극락으로 보내줄 놈인깨요. 미리부터 인사를 잘 디려노씨요."

"싫소. 징그럽소."

"그래도 비암보다는 나을 것이요. 밤마동 아짐씨를 괴롭히는 비암얼 내가 저녁에 싹 쫓아내줄 것이요. 아니, 그 놈이 쫓아내줄 것이요."

강쇠 놈이 다시 음전네의 손을 거시기 쪽으로 끌어다 놓았다. 이번에는 음전네가 놈을 꽉 붙잡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사령은 집에 자주 안 오요?"

강쇠 놈이 손 하나를 음전네의 사추리 밑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따는 아까부터 그것이 걱정이었다. 처음에는 정사령 놈에 대한 보개피로 그 놈의 계집을 어찌어찌 해야겠다고 작정했지만, 일이 의외로 쉽게 풀려가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음전네가 첫날밤도 제대로 못 치룬 새 계집이라는 말에 귀신에 홀린듯, 꿈 속을 헤매는 듯, 정신이 알딸딸하지만, 문득 어쩌면 자신이 허방에 빠진 것은 아닌가, 그런 의문이 문득 생긴 것이었다.

사람살이에 벼라별 일이 다 생긴다고는 하지만, 음전네가 의도적으로 자기한테 다가온 것은 아닌가, 자신을 허방에 빠뜨려놓고 주모한테 찾아 온 전대와 금반지를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도무지 멍청한 소견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제 말대로라면 사내도 잘 모르는 음전네가 사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뒷물을하고 기다리다가, 막상 사내가 남의 집 앞을 기웃거리자 빨래를 나오는 척 마중을 나와 가지고는 제 집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사령이 집에 자주 안 오느냐고 물어 본 것이었다.

"잘 해야 일년에 서너차례 댕겨갈둥 말둥허요. 오면 주막에 들려 술이나 몽땅 쳐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왔다가 잠만 쿨쿨 자고 가요."

"허퉁시러웠겄소."

강쇠 놈이 손바닥으로 음전네의 화덕가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퉁시러울 것도 없소. 첨에사 반갑기도 했고, 가슴도 설레었지만, 낭중에는 무심해집디다.기분이 이상해지요. 자꾸 만지지 마씨요."

음전네가 몸을 사리며 강쇠 놈의 손을 밀어냈다.

"흐흐, 이 안에 무궁무진헌 재미가 있소. 아짐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직 운우지정을 모르는 개빈디, 사람이 그 재미를 모른대서야 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소."

강쇠 놈이 음전네의 손을 털어내고 이번에는 손 가락 하나로 풀숲을 헤치고 옹달샘에 담그었다. 음전네가 흠칫 몸을 떨면서 아, 하고 신음을 내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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