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기다리는 마음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
  • 양병호
  • 승인 2012.11.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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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 헤어지더라도 해마다 첫눈 오는 날 저녁 여섯시, 덕진공원 취향정 앞에서 만나기로 하면 어때?” 이와 같은 지키기 힘든 약속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러한 약속을 아직도 기억에 간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 이제야 문득 잃어버린 추억이 생각 낳는가? 청춘 시절, 순수한 꿈과 소망을 첫눈에 의탁하여 오래도록 지속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첫눈은 언제나 관념적으로 서설(瑞雪)이었다. 첫눈은 암담하고 권태로운 이 세상을 맑고 환하게 색칠하는 순수의 상징물이었다.

첫눈이 내리면 모두 일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환한 기쁨에 젖는다. 심지어 첫눈은 강아지들조차 좋아서 눈밭에 발자국을 찍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한다. 첫눈이 오면 모두 축복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잠시 평화로운 기분에 잠긴다. 첫눈은 도회지의 탁한 공기를 맑게 씻으며 내린다. 펄펄 내려서 우중충한 도시의 건물을 하얀 생크림으로 장식한 생일케이크로 만들어 생을 축하하게끔 한다. 그리고도 첫눈은 내려 쌓인다. 가지 뭉툭 잘린 가로수에도, 시장통 노점상의 푸성귀에도, 윙윙 바람의 소리를 전송하는 전봇줄에도, 힘들게 고개를 오르는 자전거 핸들에도, 아직 켜지지 않은 아크릴 간판에도, 갈 곳 없어 길 헤매는 가난한 연인의 어깨에도 눈은 계속 내려서 쌓인다. 쌓여서 지나온 추억을 일깨우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내려 쌓인다. 그러면 시키지 않아도 누구나 아득한 과거로 돌아가 추억의 눈밭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이다. 첫눈은 순수와 환희와 평화와 설렘과 추억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내린다.

또한, 농촌에서는 아버지가 꼬끼오 첫닭 우는 새벽에 일어나 쇠죽 끓이느라 외양간 잿불을 뒤적인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밤새 식어버린 구들을 다시 뎁혀 식구들의 새벽잠 다디달게 만드느라 아궁이 속 잿불을 뒤적인다. 첫눈에는 식구들의 평화와 안식을 바라는 그런 아버지의 다순 마음이 숨어 있다. 그 마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겨울 거뜬히 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첫눈을 바라보며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과거의 추억들과 조우하는 맛에 살맛이 조금 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추억을 더듬는 재미라도 없다면 이 건조하고 바람 드센 겨울을, 아니 팍팍하고 권태로운 이 인생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첫눈은 마치 첫사랑의 풋풋한 두근거림 같다.

그럭저럭 가을이 기일 게 땅거미를 내리고, 강물은 냉정한 표정으로 청동빛 침묵에 들고 있다. 마침내 산과 들판의 나무들은 수도승의 자세로 겨울 여행을 떠나는 눈의 계절이 왔다. 이 겨울 황량함과 쓸쓸함은 들판의 고압선을 따라 윙윙 소리 내며 그대에게 배달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겨울 산하의 입 앙다문 겨울나무들처럼 맑고 투명하게 추위와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함부로 퍼붓던 눈 그친 겨울 풍경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침묵에 잠겨야 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의 움직임이 그친 겨울 촌락의 정물화 속으로 그저 묵상에 잠겨야 한다. 어쩌다가 다 무너져가는 담벼락 굴뚝으로 매캐한 연기인지 한숨인지를 희미하게 피워 올리며 추억에 잠겨야 한다.

그대가 없어 더욱 쓸쓸한 이 겨울. 제 그리움이 흐르고 흘러 어느 땐가 그대에게 가 닿기를 소망하며 첫눈을 기다린다. 청춘 시절, 그녀와의 약속이 스스로 재생 부활하여 오늘의 순수한 사랑의 기표로 눈 내릴 것이라고 애써 믿는다. 그리운, 그대여, 안녕! 하며 어렴풋한 추억을 헤치고 환영처럼 첫눈이 내리길 기다린다. 이 꾀죄죄하고 허름한 21세기 전라도 땅으로 박수치듯 첫눈이 오길 기다린다. 그리하여 우리의 남루한 생을 하얗게 불 밝히며 첫눈이 퍼붓길 기다린다. 펑펑.

양병호<시인/전북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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