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75>돈 없으면 연장이라도 떼 주씨요
가루지기 <375>돈 없으면 연장이라도 떼 주씨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07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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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25>

강쇠 놈이 한 마디로 잘랐다. 머리 속으로 문득 잠 든 사내의 몸 위에 걸터앉아 살방아를 찧던 주모의 부연 눈빛이 흘러갔다. 꼭 살자면 못 살것도 없었다. 한 달이 되었건, 두 달이 되었건, 주모가 좋아하는 살방아나 찧어주면서 세월아 가거라, 네월아 가거라ㅡ하며 못 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정사령놈이 문제였다. 막상 주모의 기둥서방이 되어 살게 되면 놈이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몰랐다. 사람같지도 않는 정사령놈하고 실갱이를 치며 살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정사령놈 때문이라는 말을 주모한테까지 할 것은 없었다.

"왜 싫소? 어따 숨겨둔 계집이라도 있소? 내가 서른살이 넘었지만, 이녁도 알다시피 아직은 팽팽허요. 편히 믹여 살리겄다는디, 먼 오기요?"

주모의 눈밑이 푸르륵 떨렸다. 얼핏 독기까지 내뿜는듯 했다.

"암튼지 싫소. 한 여자한테 매어 살기는 싫소."

강쇠 놈의 단호한 말투에 주모가 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내노씨요."

"멀 내놔요?"

"이틀동안 묵고 잠잔 값얼 내노란 말이요. 한냥 반은 받아야허제만, 하루밤얼 자도 만리장성얼 쌓는다고, 어쩌튼지 간에 아랫녁꺼정 맞춘 사인깨, 쬐깨만 받을라요. 한냥만 내씨요."

"그것이사 정사령헌테 받으면 안 되요? 정사령이 내기로 안 했소."

"문딩이 코구멍에서 마널얼 빼묵제, 그놈헌테 돈얼 받아요? 내노씨요. 난 꼭 이녁헌테 받고 싶소."

"나 돈없소. 쎄려쥑인대도 쥑인대도 없소."

"정 돈이 없으면 연장이라도 떼 주씨요. 안 그러면 내 집에서 꼼짝도 못허요이."

"멋이라고요? 내 물건얼 떼돌라고요?"

강쇠 놈이 어이가 없어 눈을 크게 뜨고 주모를 바라보았다.

"돈이 없담서요? 돈이 없으면 다른 걸로라도 갚아야제요. 약병아리는 내가 자작으로 해준 것인깨, 그것 값은 뺐소. 어뜨케 허실라요?"

눈에 서슬까지 퍼르르 이는 것이 그냥 해본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우격다짐으로 간다고 나서면 바지가랭이라도 붙들고 늘어질 계집이었다. 어쩌면 이놈이 밥값 잠값을 떼먹고 도망가려 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지도 몰랐다. 자칫 운봉관아 사령놈들이라도 알게되면 놈들이 먹잘 것이나 없는가 어물전의 쇠파리처럼 달려들지도 몰랐다.

문득 머리 속을 흘러가는 기막힌 생각에 강쇠 놈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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