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순 첫 수필집 ‘속 빈 여자‘
최정순 첫 수필집 ‘속 빈 여자‘
  • 송민애기자
  • 승인 2012.08.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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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기다림이다. 말갛게 잘 삭은 식혜를 만들기 위해 지난날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 어머니들은 꼬빡 밤을 새워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가. 더 두면 재를 넘어 시큼해지고 덜 두면 밥알이 삭지 않아서 식혜가 되지 않는다. 세월을 먹고 사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속 빈 여자」 중에서

늦깎이 수필가 최정순씨가 인생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수필집 ‘속 빈 여자(펴냄 신아출판사)’를 수줍게 내놓았다. 2007년 등단 이후 타고난 끼와 재능 그리고 노력으로 빠르게 성장해온 그의 첫 야심작이다.

저자는 “늘그막에 수필을 만난 것은 큰 횡재였다. 마치 시간이 뒤로 흐르듯이 더욱 젊은 모습으로 나를 이끌어 수필은 나에게 제2의 사춘기를 가져다주었다”면서 “나다운 수필을 씀으로써 내 특유의 향이 새록새록 피어나서 내가 즐겁고 더불어 이웃도 향기로워진다면, 이것이 바로 수필이 주는 매력이자 횡재가 아니겠는가”라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총 7부로 구성된 이번 수필집에는 ‘봄이 입덧 났네’, ‘등잔불’, ‘수신확인’, ‘어머니의 장독대’, ‘라디오와 엄지발가락’, ‘배다른 형제’, ‘우리집 10대 뉴스’ 등 소소한 삶의 편린이 빼곡히 담겨 있다. 예순다섯, 어느덧 인생의 후반에 들어선 저자는 그동안 걸어온 생을 되돌아보면서 인생의 고비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과 특별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반추한다. 또한, 삶에 대한 단상과 일상의 소회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저자 특유의 유쾌함과 활달함이 돋보인다. 수많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는 위트 있는 문장과 재치로 끊임없이 긍정의 힘을 전한다. 일례로 저자는 인생의 어려움을 식혜 담그는 과정에 비유, 독자들에게 보다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전한다.

“식혜와 인생, 그것은 한마디로 결국은 기다림과 삭임이라 말하고 싶다. 전분이 맥아당으로 변화되어야 식혜가 된다. 싹이 튼다. 밀알 하나가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곧 내가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려내야 하고, 걸러내야 하며, 가라앉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삭히는 일이 말같이 쉽지 않다. 휴지통을 비우듯이 나를 다스리는 일이 쉽다면야 누구나 다 달인이 되거나 성인이 될 것이다. … 비어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무한한 자유의 충만이다. 그러니 먼저 비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나는 잘 삭아서 맛을 내는 식혜 속의 밥알 같은 ‘속 빈 여자’가 되고 싶다.” 이처럼 저자는 식혜라는 일상의 소재를 참신하게 해석, 삶에 대한 단상을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내고 있다.

김학 수필가는 “좋은 수필을 쓰려면 참신한 소재와 참신한 해석 그리고 참신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정순 수필가는 소재에 대한 해석이 참신하고 그 표현 역시 남다른 점이 눈에 띈다”며 “이번 수필집이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역임을 명심하고 불광불급의 정신으로 더 치열하게 작품을 빚어주길 바란다”고 평했다.

송민애기자 say2381@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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