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민체 서예가-효봉 여태명
최초 민체 서예가-효봉 여태명
  • 송민애기자
  • 승인 2012.08.0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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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봉 여태명
‘서예(書藝)’는 문자의 예술이다. 문자란 언어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기호의 체계(體系). 이와 같은 문자를 매개로 자신의 감성과 철학 그리고 세상의 오묘한 이치와 진리를 담아내는 예술이 바로 서예다. 그래서일까. 서예는 여러 예술장르 중에서도 가장 무한한 변화와 창조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공간 안에서 자유자재로 작가의 사상과 철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효봉(曉峰) 여태명(57·원광대학교 교수)은 이러한 서예의 독특한 특성을 일찍부터 간파, 필묵의 재해석과 새로운 실험을 통해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온 서예가다.

한자 대신 한글 서예에 천착하는가 하면, 서예의 생활화를 위해 캘리그라피 보급·발전에 힘 쏟았고, 지각과 전각 그리고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서예의 형식적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년 전부터는 거리로 나가거나 무대에 오르며, 서예의 교감과 소통을 위한 서예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대개의 서예가들이 고전적 필법을 보다 깊이 있게 구사하는데 중점을 두는 반면 그는 보다 다양하게 서예의 길을 모색하고 방향을 탐색해온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서예는 기존 서예계의 풍토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샛길로 샌’ 셈이다. 전통서예를 고수하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던 당시 한국 서예계에서 그의 행보는 한마디로 파격적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한동안 서예계에서 논란과 질시의 대상이 됐다. 기존 서예의 틀에서 벗어났단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고, 한때 서단에서는 ‘전통 서예는 모른다’며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껏 공모전과 관련한 변변한 상장 하나 없다.

그러나 사실 그는 미술특기생으로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할 만큼 동양화와 서예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서예의 정석인 전, 예, 해, 행, 초 등 오체에 두루 능할 뿐만 아니라 동양화와 문인화 그리고 전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를 아우른다. 그럼에도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묵묵히 전통을 기반으로 서예의 현대화 작업에 매진해왔다. 그가 온갖 비난과 질타 속에서도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지속해온 이유는 단 하나. ‘예술도 생활 속에서 공유돼야 진정한 생명력을 갖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예술은 생활 속에서 함께 공유돼야 진정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죠. 시대는 자꾸 바뀌고 있는데 그 흐름은 무시한 채 옛 것만 고집한다면 대중들과 멀어질 수밖에요.” 그동안 그토록 민중적 정서를 추구한 까닭도, 서예의 상품화와 생활화에 천착한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일 테다. 그래서인지 그의 서예, 혹은 예술은 고상하고 세련된, 도도하고 지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다정하면서도 친근하고 서민적이다.

이와 같은 정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그의 예술작업 중 백미는 민중적 서체로 대변되는 ‘민체(民體)’의 재발견이다. 민체란, 조선시대 한글사용의 확대와 더불어 서민들이 서신을 교환하거나 구어체로 말하던 서간, 가사, 한글소설의 발전을 토대로 그 소설을 베껴 쓰는(書寫)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태동한 소박하고 인간적인 멋을 풍기는 서체.

▲ 효봉 여태명은 한국서예사 최초로 민체라는 개념을 학계에 발표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노력으로 한글서예는 궁체, 판본체, 민체 등 3체를 정통서체로 하는 체계를 형성하게 됐다

민체의 발견은 한글서체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에서부터 비롯됐다. 그간 끊임없이 한글서체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10여 년 동안 1,000여 권의 한글 필사본을 수집, 그 과정에서 민족의 얼과 민초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민체를 얻어냈다.

그는 “한글서체에 관심을 갖으며 연구에 매진하던 중 우연히 전주의 한 골동품상에서 조선시대 민간 서체의 필사본을 보게 됐다”며 “그 필사본을 보는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윽고 그는 1992년 ‘오늘의 한글서예작품 초대전’에서 개최된 학술발표회의에서 한국서예사 최초로 민체에 대한 개념을 학계에 발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궁체나 판본체가 아니면 서예작품이 아니라는 편견을 깨고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민체 작품을 활발히 창작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 서체를 현대감각에 맞게 체계화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1994년 민체에 관한 한글 서예판본을 출간하고, 98년에는 자신의 호를 딴 ‘효봉 흰돌체’와 ‘효봉 개똥이체’ 등 컴퓨터용 한글폰트를 CD롬으로 제작해 선보였다. 이 같은 그의 노력으로 한글서예는 궁체, 판본체, 민체 등 3체를 정통서체로 하는 체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한국 서단의 한 획을 그은 발견이자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간 문자의 극적 변화추구를 넘어 의미의 조형화를 추구하며 서예의 현대화에 앞장서온 효봉. 이제부터는 더욱 폭넓은 범주 안에서 문자를 활용한 서예와 문자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삶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졌으므로 서예문화 역시 새롭게 창출돼야 합니다. 과거의 것만 붙들고 있다고 해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점의 것이 나중에는 전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앞으로도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창조에 더욱 힘 쏟을 계획입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젊고 뜨거운 열정과 패기를 지니고 있는 효봉 여태명. 언제나 열린 사고와 창조적 작업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떤 결실을 이뤄낼지 자못 궁금하다.

▲여태명 서예가 걸어온 길

- 1956년 전북 진안 출생

- 전주고등학교 졸업

- 전주대학교 미술과 및 동 대학원 회화과 졸업

- 현재 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협회 회장

- 현재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예문자예술학전공 교수

 

 

송민애기자 say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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