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차기와 노송광장의 장소성
제기차기와 노송광장의 장소성
  • 김동영
  • 승인 2012.07.31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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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이 되면 시청 앞 노송광장에는 다 큰 어른들이 제기를 차기 시작한다. 그런데 제기를 차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일단 제기부터 시중에서 파는 제품이 아니다. 스스로 천을 잘라 자신의 개성에 맞게 하여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연령대도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며,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는다. 직업 또한 서양화가부터 대학교 강사, 방송작가와 일반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약 1시간가량 계속되는 이들의 제기차기는 마치 한삼자락을 휘두르며 세상에 대한 해학과 풍자로 우리네를 웃게 하던 광대들의 몸짓을 닮았다. 어떤 이는 하늘에라도 닿을 듯 제기를 높이 찼다가 사뿐히 받아내고, 어떤 이는 나풀나풀 나비처럼 제기와 함께 날 듯 날 듯 제기를 찬다.

이들이 노송광장에서 제기를 차기 시작한 것은 한 달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처음 이 모습은 조금 생경했지만 광장은 원래 다양한 시민들의 놀이터이자 휴식처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마름이 큰 한옥 마당에서 뛰노는 어린이처럼 제기를 차는 모습을 보니 언젠가는 나도 저들 무리에 끼어 내가 만든 하나뿐인 제기를 춤추듯 차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저번 주에는 노송광장에서 제기차기보다 더욱 생경한 모습을 보게 됐다. 고려시대의상처럼 보이는 저고리를 입은 20여 명의 무리가 노송광장에서 필드하키처럼 막대기를 들고 공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닌다. 양쪽에는 골대처럼 깃발을 꽂아놓고 두 편으로 나뉜 사람들은 막대기로 쳐서 나무 공을 깃발 사이로 넣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옥을 닮은 시청건물 앞마당에서 여러 무리가 전통의상을 입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참을 보고 있다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전통놀이 중 하나인 ‘장치기’를 시연하고 있다고 한다. ‘격구’로도 불리는 ‘장치기’라는 서양의 필드하키와 비슷하게 나무 채로 나무 공을 쳐서 깃발 사이에 넣는 놀이로, 고려시대 시작해서 조선조에 궁중과 상류사회의 놀이였던 것이 점차 민속놀이화 되었다고 한다. ‘장치기’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전주에서 활동하는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의 회원들로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를 배우고 익혀 이를 가르치는 전통놀이 선생님들이라고 한다. 이날은 그동안 배웠던 장치기를 직접 시연하는 날로 연기군의 민속박물관 관장님의 지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노송광장에서 본 제기차기와 장치기의 두 장면은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대표적인 과정을 담고 있다. 시청 주차장이던 공간을 시민들의 휴식처로 만들겠다고 시작한 노송광장조성사업은 몇 달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노송광장은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인식되기에는 거리감이 있는 공간이었다. 시위대에 점령당한 노송광장이나 시위의 과정에서 욕설을 하거나 변을 보는 이벤트들은 분명 노송광장을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인식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이제 노송광장을 진정한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줘야 할 때다.

특히, 전주와 완주가 통합이 되고 시청사가 이전하면 노송광장은 과거와는 다른 장소성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때는 업무나 일의 공간에 딸려있는 부속공간이 아닌 광장과 건물의 정체성이 일치된 문화의 공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노송광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제기차기와 장치기는 의미가 있다. 눈으로 보는 공간을 참여의 공간으로 바꿔 시민들의 경험이 공간에 이식될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 여기에 여름밤 삼삼오오 노송광장에 모여 돗자리를 깔고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으며 시립예술단이 준비한 클래식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보면서 밤하늘을 향해 누워 별을 헤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광장의 장소성은 누군가 만들어주는 결과가 아니라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시민을 위한 공연이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전주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스름 땅거미와 함께 가로등이 켜지면 노송광장은 용마름이 있는 큰 집 한옥 마당처럼 시민들에게 휴식과 놀이의 장소를 내놓는다. 수요일 저녁 아이들과 집에서 만든 제기를 들고 노송광장으로 나와 보는 것은 어떨까? 수백 명의 시민들이 저마다 다르게 만들어 온 제기가 노송광장을 날아다니는 장관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김동영<전주시정발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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