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관문, 초지진
조선의 관문, 초지진
  • 김상기기자
  • 승인 2012.06.04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화도 초지진.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1656년 강화도에 구축한 요새다. 이곳은 1866년(병인양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1871년(신미양요)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아세아 함대와 격전을 벌인 곳이다. 또한 1875년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도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 조선의 관문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 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해 우리 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안되는 열세한 무기로 외세에 대항해 처절하게 싸웠다. 특히 일본군함 운양호의 침공은 결국 강화도조약으로 이어져 인천과 원산, 부산의 항구를 개항하고, 우리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초지진에는 병마첨절제사 1인, 군관 11인, 군사 320인, 전선 3척이 주둔했었다고 한다. 현재 초지진의 성벽과 소나무에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황을 말해주는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상기기자 s4071@domi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