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우환
화가 이우환
  • 이흥재
  • 승인 2012.03.23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고유의 ‘단색화’는 1970년대 시대에 대한 저항운동의 표현이다.” 지난 3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특강에서 이우환 선생이 한 말이다. 한국의 단색화는 1980년대 민중미술 진영의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선생의 반론이다.

이우환 선생은 2011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이우환: 무한의 제시 Lee Ufan : Making Infinity> 개인전 초대를 받았다. 백남준 선생 이후 두 번째로 초대받은 한국의 작가이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 친척 방문차 일본에 방문하였다가 그곳에 머물게 된다. 지금까지 50여 년을 일본에 살면서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이다. 그 탓에 한국에서는 일본 색깔에 젖었다고 하고, 일본 쪽에서는 역시 한국 냄새가 짙다고 한다. 또 유럽에 가면 저 작가는 동양인이라고 내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고독하다. 어디에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러나 그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관계가 너무 많아서 양쪽을 다 아우르는 중간자라고 한다.

선생은 도쿄 니혼대학(日本大學) 철학과에 편입, 하이데거, 메를로 퐁티 등의 서구사상과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를 공부했다. 이후 미술 분야로 방향을 전환하여 여러 실험적인 작업들을 하던 중 서구 모더니티의 비판에서 출발한 모노파 미술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올 봄 미술품 옥션에 나온 조응(Correspondance)라는 작품의 경매 시작가는 1억 천만원에서 1억 칠천만원이다. 이 작품은 50호 크기의 캔버스 위에 커다란 회색의 점하나만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점하나 그려져 있는데 1억원이 넘는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유럽의 미술품 수집가들 중에는 한국의 작가 중에서 오직 이우환 선생의 작품만 구입을 한다고 한다.

이우환 선생이 쓴 ‘여백의 예술’에 나오는 몇 대목이 선생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는 쌀을 씻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어머니에게 물었었다. “ 그렇게 언제나 똑같은 일만 되풀이하면서 뭐가 신이 나세요?”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하는 일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쌀을 씻는 느낌은 똑같지 않다. 물이 차가워서 긴장될 때도 있고, 새의 지저귀는 소리에 흥이 날 때도 있지. 쌀과 물과 손의 호흡이 꼭 맞는 때도 있고, 할아버지의 화내신 얼굴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지. 어쨌든 간에 나는 이 쌀 씻는 일의 반복 가운데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이때의 어머님 말씀을 얼마나 되풀이하고 되새겼는지 모른다. 동일성과 차이를 둘러싼 본원적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일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또한, “한 장의 그림을 봄으로써 현실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시적인 일인가? 그림을 보기 전과 본 뒤하고는 주변의 대상이나 공간이 다른 것으로 비치게 된다. 한 장의 그림을 봄으로써 감각에 눈을 뜨고, 현실이 좀 더 생기 넘치는 세계로 살아난다. 일상을 신선하게 느끼게 하고, 그것을 보이게 하여 주는 예술의 힘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소나무에 대해서 쓴 글도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선생이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본 소나무는 크든 작든 간에 한결같이 줄기가 구부러지고 돌이 많은 계곡이나 산기슭에서 자라고 있었다. 소나무 줄기나 가지가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는 것은 아마도 양분이 적고 뿌리를 깊이 내리기 어려운 토양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옛날 문학에서는 그것이 멋진 모습이고, 대단히 시적이라고 칭송되었고, 우리도 그런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인간도 그처럼 이리저리 구부러져야 멋있다는 식으로 읊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해변의 백사장에 정연하게 높이 늘어선 소나무를 봤을 때 뭐 저렇게 멋대가리 없는 소나무가 다 있는가 하고 생각했었단다. 그 뒤 전람회를 위해 유럽에 갔을 때 로마의 보르게제 공원의 하늘 높이 서 있는 풍요로운 소나무를 보고 소나무의 생김새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 후 뉴욕에서 무성한 가지와 잎사귀를 펼치고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의 존재에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지역의 별의별 소나무와 만나고 그것들이 제각기 나름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지역이나 장소,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는 일은 흔하다. 동시에 다양한 형태나 색상, 이미지의 상이함을 넘어, 그들이 소나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인간의 공통감각에 새삼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도 또한 그러하리라.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는 만 리를 여행하고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린 그림은 사기다. 라고 한 말이 항상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6월 초부터 우리 미술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릴 때, 전북도립미술관에서도 이우환 선생의 특강을 직접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