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勸없는 학교에 조폭이 자리 잡았다.
敎勸없는 학교에 조폭이 자리 잡았다.
  • 황병근
  • 승인 2012.02.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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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勸없는 학교에 조폭이 자리 잡았다.

곪을 데로 곪아온 정계가 한누리당 돈 봉투 사건을 시작으로 한군데도 성한데가 없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 극한 상황에서

환골탈태를 위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뒤질세라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매체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학교 폭력은 2010년에 115건 이던 것이 2011년에는 156건으로(35.7%)가 증가하여 계속 증가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단순한 신체적 폭행을 뛰어넘어 집단 따돌림(34.8%) 협박과 욕설이(20.1%) 금품갈취가(7.6%) 성폭행(16.6%) 등으로 나타났다.

전북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보니 지난 1월 27일 청와대 학교폭력대책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모아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했고 조정실 협의회장은 극소수의 무자격 선생과 학부모가 전체를 흐렸다며 어른들의 책임이 문제라고 했으며 이경자 연합회장은 교사들의 사명감 결여가 문제라고 지적한바 있다.

경찰의 단속강화나 교사들의 직무 유기적 책임을 묻는 경찰의 사찰적 단속방법을 운운하고 있으나 이미 길들여져서 쇠어버린 청소년들의 삐뚤어진 정서를 진정시키기에는 이러한 지엽적인 해결책으로는 임시방편에 불과 하다.

학교폭력은 이미 민주교육이나 자유개방등의 합당치 못한 명분을 앞세워교사 들의 ‘사랑의 체벌’을 성토하고 제재하며 학부모들의 자녀들을 과잉보호나 옳고 그름의 판단을 가눌 수가 없는 정서적 불구자로 길러왔던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자유란 정의와 인도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하는 개인적인 활동을 말한다.

예로부터 교직을 일러 교편(敎鞭)을 잡고 있다고 일컬어 왔다.

교편이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갖는 ‘회초리를 지칭한다’ 분별력이 없는 철없는 애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사랑의 체벌을 하여 바로 잡아주는 것이 회초리 교육으로서 국가 백년지대계를 책임지는 동향으로 성장하게 했던 것이며 어려서 고처 놓지 못하면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권위가 높았던 예전에는 동료가 나쁜 짓을 할 때 선생님한테 이르겠다고 하면 바로 나쁜 짓을 멈추곤 했었다.

그만큼 선생님은 최고의 권위로 존경 되었다.

벌금을 3천만원이나 선고받고도 서울시 교육감에 복귀한 곽노현 교육감은 한술 더 떠서 학생인권조례로 교사들의 손발을 묶어놓은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교육을 기약 할 수 있을까 암담하기 그지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철부지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부도덕 사행성 행동이나 튀는 행동, 손쉽게 얻어지는 갈취행위 등에 더욱 매력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법이다.

대통력의 친인척 비리가 도를 넘었고 최측근 5인방이 불명예 낙마를 했으며 국회의장 청와대 핵심간부가 기소되고 경찰수뇌의 비리가 터지는 등 국정수뇌들이 이미 이성을 상실한 채 정치경제 사회 교육이 청소년 보호의 무관심속에 사리사욕에 함몰되어 있는 순간 학교폭력은 고개를 들었다.

월급쟁이 교사는 있어도 사도를 지키는 스승은 없고 소질과 능력을 무시하고 일류대학만 보내면 된다고 하는 학부모들의 자기만족만을 위해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그릇된 가정교육, 권력 남용으로 얻어내는 치부, 겸손과 양보는 무능한자들의 구시대적 양심으로 폄하되며, 역사교육과 예절교육이 없는 정체성의 부재,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탐욕적 이기주의만이 판을 치는 현실사회에서 어린학생들이 ㅁㅝㅆ을 보고 배울 수 있었겠는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맹자를 성인으로 길러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묘지 옆에서 살 때는 장사지내는 것만 흉내 냈고 시장근처로 이사를 하니 장사꾼 흉내만 냈으며 글방 근처로 이사 한 뒤에는 글 읽는 흉내를 내게 되어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른들이 하는 탐욕적 행동이나 만연된 악습은 곧바로 청소년들의 본보기가 되고 길잡이가 되어 거침없이 행할 수 있는 가치로 자리 잡게 된다고 볼 때 학교폭력이야말로 어떠한 부정을 동원해서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성공이라고 하는 기성세대들의 올바른 과정을 무시한 탐욕적 결과주의가 물려준 필연적인 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의 복지만을 위한 봉사정치의 구혐, 도의가 바로서는 사회적 가치정립, 사도의 권위가 확보되는 스승상 확립, 덕성을 숭상하는 교육과 맹모삼천의 가정교육 등이 바로서고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기성세대들의 모범됨 가치 기준이 확립될 때 비로소 학교폭력은 스스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전 전북대 예총 연합회장 황병근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

에버그린밴드 단장겸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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